“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정육점, 양조장,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그들의 생각 덕분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작성한 유명한 문구다.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을 설계한 이론이라고 알려져 있다.
‘시민 활동가’라는 직업으로 살아온 필자는 저 이론이 인간의 반쪽 면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 활동가는 누군가의 회비와 후원금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한 직업이다. 시민들은 세상이 공평해지고 밝아지길 바라며, 수많은 시민단체·구호단체 등을 후원하고 있다. 사람에게 이익을 챙기려는 욕구 이외에 공익을 위한 공적 심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가수 션은 아내 정혜영과 함께 평생 60억원 넘게 기부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기부 마라톤 대회를 열어 81.5㎞를 뛰고 참가비와 기업 후원금 수십억원을 기부해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환경 개선 사업에 쓰이게 했다. 션의 행위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기부는 왜 하는 것일까? 평소 이들의 원동력은 무엇이고, 어떤 만족감으로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 주선으로 개그맨 황기순에 대해 구술 기록을 채록할 기회를 얻었다. 황기순은 2000년부터 ‘사랑 더하기’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총 7억4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사랑의열매에 기부했다.
그는 1982년 데뷔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부와 명예를 얻었다.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개그맨이 되어 각종 CF를 찍었다. 그러다 운영하던 사업체가 위기를 맞았고, 이에 대한 스트레스로 도박에 손을 댔다.
그때 도움의 손길을 주었던 것은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과 동료 개그맨들이었다. 필리핀에서 방황하고 있던 때에 김정렬은 동료 개그맨들의 후원금을 모집했다. 이후 필리핀으로 가서 늪에 빠져 있던 황기순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 가장 감동한 선물은 김정렬이 손수 포장해 온 반찬과 동료들이 써준 편지였다.
한 편지에는 ‘기순아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와’라고 적혀 있었다. 개그맨 주병진의 글씨였다. 그렇게 동료들의 도움으로 그는 한국에 올 수 있었고, 재기할 기회를 얻었다. 위기는 사람에게 근본적인 변화와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다가 거리모금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2000년에 휠체어를 타고 전국 모금 투어를 진행한 결과 600만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휠체어 52대를 샀고, 광주 장애인단체에 30대를 전달했다. 모금 과정이 너무 힘들어,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그런데 운명처럼, 광주 장애인단체의 휠체어 전달식에 초대받아 참석한다. 강당 문을 열고 행사장에 들어선 순간 자신이 기부한 휠체어를 보고 큰 감동과 보람을 느껴 모금 행사를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전국을 누비며 고생한 결과물을 직접 보고 전달식까지 해보니 그 행복감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모금은 2025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28~31일 서울 남대문과 인천 월미도에서 4025만원을 모금했다. 이 돈은 사랑의열매에 전달돼 저소득층 생활비와 의료비, 연탄 나눔 등에 지원된다. 그의 옆에는 사랑의열매 홍보대사인 가수 박상민이 계속 함께하고 있다. 모금의 동반자다.
인터뷰하면서 거리모금이 황기순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확신이 들었다. 황기순은 기부는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행복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부자와 초창기 모금문화를 기획했던 사람들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 ‘나눔문화아카이브’를 11월12일 개관한다. 기부자들의 선한 영향력이 기록을 통해 꽃씨처럼 널리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