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고단백 식재료 ‘꿩’…수라상 부럽잖은 코스요리로 즐겨

2024-10-09

‘꿩 구워 먹은 소식’

소식이 전혀 없음을 뜻하는 옛 속담이다. 맛 좋은 고기로 손꼽히던 꿩은 구하기도 어렵고 양도 적다보니 나눠 먹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꿩고기가 생기는 날엔 아무리 가까운 사이에도 연락하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먹었던 것을 보고 생긴 말이다. 왕실 진상품이자 궁중 잔칫상에 빠지지 않았던 꿩은 충북 충주의 오랜 향토음식이다. 특히 충주 수안보 일대는 산에 둘러싸여 꿩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꿩요리가 다양하게 발달했다.

꿩은 우리말로 수컷은 장끼, 암컷은 까투리라고 하며 한자어로는 치(雉)라고 한다. 크기는 닭과 비슷하지만 꼬리가 길고 무늬를 갖고 있다. 우선 수컷은 화려한 외모가 돋보인다. 꼬리가 18개 깃으로 이뤄져 있고 눈 주위가 붉다. 또한 목에 흰색·녹색·황색·적색 등 알록달록한 색을 띠고 있는 게 특징이다. 암컷은 뚜렷한 흰 점이 있고 흑갈색·황색 무늬가 몸통을 덮고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은 꿩고기 애호가로 전해지는데 우리나라 최고 역사서 ‘삼국유사’엔 하루에 꿩을 9마리씩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임금 가운데 가장 장수했던 영조 수라상엔 매일 꿩고기가 빠지지 않고 올랐다고 하니 꿩이 예로부터 건강과 장수를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꿩고기는 필수아미노산을 포함한 고단백·저열량 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의학에선 꿩고기를 찬 음식으로 분류하며 소화기관을 보강하고 원기회복에 좋다고 한다. 실제로 암 환자나 큰 수술 환자처럼 체력 회복이 필요한 이들이 많이 찾는다.

꿩은 성질이 예민해 기르기 어렵다. 10월부터 통통하게 살을 찌워 4∼6월에 알을 낳는데 알 개수는 한번에 10개 내외다. 부화율이 60% 미만으로 부화율 90% 이상인 닭에 비해 현저히 낮다. 사육은 물론 도축 후 보관도 까다로워 전문기술이 필요하다. 송계계곡 근처 꿩요리 전문점 ‘대장군’은 꿩요리기능보유자 1호인 박명자씨의 기술을 그의 딸 고향순씨, 사위 차봉호씨가 자부심을 갖고 이어가고 있다. 식당 옆에선 직접 8000∼1만마리 꿩을 방목해 사육한다. 한해에 6000마리 이상을 도축하는데 6개월이 넘은 장끼만 사용한다. 차씨는 꿩요리는 신선한 꿩 육질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한다.

“꿩은 잡은 지 하루만 지나도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져요. 꿩 껍질에 거의 유일하게 지방이 2.7g 정도 붙어 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물처럼 녹으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죠. 그래서 꿩을 잡을 땐 30분 안에 껍질을 벗겨 바로 식혀서 차갑게 유지해야 해요. 냉동실 문을 여닫을 때 발생하는 약간의 온도 변화에도 육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영하 60℃에서 보관하고 있죠.”

충주 꿩요리는 여러 방식으로 조리된 꿩을 차례대로 즐기는 코스로 나온다. 이 식당에선 전통 꿩요리를 9가지로 선보인다. 꿩 동치미를 시작으로 생채·회·만두·초밥·산나물전·꼬치·불고기·수제비 등이다. 차씨는 “꿩은 생으로 먹으면 백점, 익혀 먹으면 빵점”이라며 “그만큼 꿩고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회로 먹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가슴살이 회로 나왔다. 신선한 꿩으로만 맛볼 수 있다는 꿩 회는 고추냉이를 얹어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다. 조금 심심하다면 새콤한 무절임과 곁들여도 좋다. 마치 참치회 같은 모습이지만 비린맛이 없다. 섬유질이 얇아 아주 부드러우며 담백하다. 충주 특산물인 사과와 꿩 회를 얇게 썰어 얹은 꿩 사과초밥도 별미다. 생선초밥과 달리 기름기가 전혀 없어 깔끔하다. 꿩요리 가운데 가장 익숙한 건 꿩 만두다. 두부·쪽파·표고버섯 등 채소에 100% 꿩고기만 여러 부위를 다져 소를 채운 꿩 만두를 입에 넣으면 구수한 육향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3시간만 우려도 복국만큼 시원한 맛을 내는 꿩 뼈 육수에 손 반죽한 수제비로 마무리한다.

여행 가기 좋은 가을날, 임금님 같은 하루를 누리고 싶다면 청풍명월 충주에서 꿩요리를 맛보길 추천한다.

충주=김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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