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승산마을 지수초교와 삼성·금성·효성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큰 부자들은 호남에 몰려 있었다. 넓은 옥답을 소유한 대지주가 호남에 많았던 탓이다. 대표적인 큰 부자로 북도의 김성수와 남도의 현준호를 들 수 있다. 김성수는 동아일보를 세우고 고려대를 인수해 그 명맥을 지금까지 잘 잇고 있다. 반면 현준호는 농업자본을 금융자본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어도 일제의 탄압으로 당시 잘 나가던 유일한 민족은행인 호남은행을 사실상 빼앗겨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그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친할아버지인데 그의 재산 일부가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에 흘러갔어도 지금은 이 회사조차 다른 곳에 인수돼 현대그룹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1921년 개교, 일대의 첫 초등학교
이병철·구인회·조홍제 나란히 다녀
집성촌 이룬 GS 허씨 집안의 허준
구인회와 함께 독립운동 자금 쾌척
지수초교 자리 기업정신 전시관
남명 조식 실용주의로 풀었어야
이병철·구인회·조홍제가 심은 부자 소나무

해방 후에는 영남에서 큰 부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진주의 지수초교가 이 큰 부자들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이 학교는 1921년에 개교해 이 부근에 처음 세워진 초등학교로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럭키금성(LG와 GS의 전신)의 창업자 구인회, 효성의 창업자 조홍제가 이 학교를 함께 다녔다. 이 학교 교사 앞의 큰 소나무가 이런 사실을 증명하는데 이 세 사람은 학교 옆 바위틈에 자라던 작은 소나무를 옮겨 와 심고서 함께 가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가리켜 ‘부자 소나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이 창업한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에는 ‘별 성(星)’ 자가 똑같이 있어 이채롭다. 효성은 새벽 별인데 금성도 새벽에 반짝이는 별이니까 금성과 효성은 같은 사명이다. 금성은 후에 럭키금성이 되고, 럭키는 락희(樂喜)로 바뀌어서 한때 락희금성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LG로 통일되었다. LG는 사람들이 ‘Life’s Good’으로 아는데 원래는 ‘Lucky Gold star’의 앞자리를 따와서 만든 사명이다. 또 LG에서 분리된 GS는 ‘Gold Star’의 준말로 보여 LG·GS·효성에는 모두 금성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보면 지수초교 출신 이들 창업자에게 별은 꿈과 희망을 주던 단어다.
‘큰 부자 난다’ 전설 현실로

이 세 사람이 지수초교를 함께 다닌 건 지수초교가 있는 승산마을과 그 근처에 살아서다. 이병철은 승산마을과 멀지 않은 의령군 정곡면에 살았는데 누이가 이곳 허씨 집안에 시집와 이 학교에 잠깐 다녔다. 조홍제는 승산마을과 인접한 함안군 군북면에 살았음에도 어쩐 일인지 이 학교에 다녔고, 구인회는 이곳 토박이라서 당연히 지수초교에 다녔다. 한편 승산마을에서 남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솥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리(8㎞) 안에 큰 부자가 3명 나온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이 전설은 이병철·구인회·조홍제의 등장으로 사실로 판명됐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많은 부를 모았을까? 이곳 사람들은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설명한다. 승산마을은 금닭이 둥지를 틀어서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라 한다. 이런 명당은 어미가 둥지에서 새끼에게 먹이 주는 모습으로 아이를 키우기 좋은 장소이다. 또 풍수지리에서 물은 재물을 뜻하는데 남강이 승산마을을 휘감아 도는 데다 흘러나가는 수구(水口)가 좁아 부의 기운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반면 유출은 적어 부자를 내는 자리라고 한다. 또 승산마을 앞 방어산 정상 아래에 흔들바위가 있는데 바위가 기울어진 쪽으로 부자가 난다는 전설로 진주와 함안 사람들이 서로 자기 쪽으로 바위를 기울게 했다고 한다.

승산마을은 부자 마을로 이런 오랜 전통을 지녀서 조선 시대에 한양에선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이는 경상우도의 중심지인 진주보다 부자 동네인 승산마을이 한양의 명문 세도가에게 더 큰 관심거리여서다. 그런데 승산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부를 간직한 데는 김해 허씨가 그 중심에 있었다. 지금은 그 후손이 LG그룹에서 분가한 GS그룹을 이끌고 있다. 한편 김해 허씨가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린 건 조선 성종 때로 입향조인 허추(許錐)가 여기로 이주해 와서인데 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허씨들이 많이 살아 허씨 집성촌을 이룬다.
수완 좋은 허씨, 돈 쓸 줄도 알아
허씨들이 돈을 많이 모은 데는 풍수지리적 요인도 있지만, 수완도 좋고 부지런한 데다 근검절약한 탓이다. 그런데 이들은 돈을 쓸 줄도 알아 어려운 이웃에게 잘 베풀었다. 이런 선행은 근대에 들어 허복(許馥)에게 이어졌다. 그는 유학자였어도 가난한 사람의 세금 대납을 위해 박애사(博愛社)를 설립했고, 20세기 초 근대화의 바람이 불자 초등학교를 지을 부지도 희사했는데 지수초교가 이 자리에 들어섰다. 또 그는 성균관대 설립자 김창숙의 독립운동에 연루돼 일제 강점기 때 대구경찰서에 수차례 투옥된 적이 있는 의식이 깨인 부호였다.

또 허만진의 집 앞에는 돌이 쌓여 만들어진 조형물이 있는데 가난한 사람이 춘궁기 때 먹을 양식을 얻으려면 인근 방어산에 있는 돌을 이 집 앞에 옮겨다 놓으면 돼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허만진은 이들에게 곡식을 그냥 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 구걸하는 거라고 여길까 봐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가져가는 것처럼 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런데 이 돌들이 쌓여 금강산처럼 되자 이곳 사람들은 ‘승산마을 금강산’이라 불렀다. 그러니 ‘승산마을 금강산’은 허씨 집안이 자신들의 선행을 티 내지 않으면서 가난한 이웃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끔 배려한 상징물이다.

허준(許駿)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던 남명 조식을 흠모해 사랑채에 성경재(誠敬齋)란 현판을 걸고 그의 경의(敬義) 사상을 실천하고자 애쓴 탓인지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 만든 위장회사 백산상회의 지분 중 상당 부분을 보탰다. 구인회도 ‘당할 때 당하더라도 나라를 되찾자는 그의 청에 힘을 보탠다’라는 신념으로 독립자금을 건넸다. 또 구인회와 함께 락희화학을 창업한 아들 허만정의 건의를 수용해 일신여고(현 진주여고)를 설립했고, 그의 손자 허완구는 이 학교를 대학캠퍼스처럼 꾸며 박경리라는 큰 소설가도 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승산마을의 정신적 지주였다.
구인회, ‘적 만들지 마라’ 늘 강조

그런데 허씨와 구씨 두 집안은 사회적 책임 못지않게 화합도 중시해 불협화음 하나 없이 한 기업을 오랫동안 함께 운영해 왔는데 LG그룹을 통해서다. 그리고 구씨의 LG와 허씨의 GS로 분리될 때 어떤 잡음이 없었고, 지금도 아무런 뒷소리가 나지 않는 건 사돈인 탓도 있지만, 두 집안 분위기가 크게 작용해서다. 구인회는 평소 ‘사람을 사귀면 결별하지 말고, 부득이해 결별해도 적을 만들지 말라’고 늘 강조했다. 지난번 경주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릴 때 서울 강남의 한 치맥 집에서 삼성의 이재용, 현대의 정의선, 엔비디아의 젠슨 황의 러브 샷이 인상적이었던 건 사업 차원을 넘어 화합의 모습으로 비춰서가 아닐까?
한편 지수초교가 폐교되고 그 자리에 들어선 ‘기업가정신 전시관’의 전시 내용은 그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데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아서 안타깝다.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유학자 남명 조식의 철학을 지수초교 출신자들의 기업가정신과 무리하게 연결해 이를 작위적으로 풀어내서다. 남명은 노장사상을 받아들인 탓에 조선의 대부분 유학자와는 달리 관념적 사고에 매달리지 않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했으니까 이를 중심으로 기업가정신을 풀어냈으면 관람자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0년대만 해도 사업하는 사람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해 모리배(謀利輩), 즉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불렸다. 지금은 이렇게 부르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데는 이곳 허씨와 구씨의 선행과 화합의 정신에 더해 애국심도 한몫했을 텐데 이런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에서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정신이 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을 한강의 기적으로 바꾸었다고 본다.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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