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욱 편집위원
필자(筆者)는 휴일이면 오름이나 숲길을 걷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오름이나 숲을 찾아 걷는데, 이런 오름이나 숲은 탐방로가 없기 때문에 가지덤불이나 조릿대 등을 헤치고 지나간다.
그러다보니 뱀을 자주 마주친다. 살무사나 유혈목이 등 독사가 주로 눈에 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자는 뱀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탐방로가 없는 숲을 헤치다보면 뱀을 밟을 수 있고 물릴 수 있기 때문에 뱀의 독니가 뚫지 못하는 특별한 장비를 무릎 아래에 착용하고 탐방에 나서고 있다.
지금은 이처럼 깊은 숲에서나 뱀을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시골에서 쉽게 뱀을 볼 수 있었다.
여름철 초가집 마루에 누워 있으며 처마 들보에 커다란 구렁이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특히 비가 내린 후 개이면 골목길이나 마당, 돌담 등에 자주 뱀들이 나타난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함께 마을 연못에 수영하러 가면 뱀들이 나타나고, 몇몇 친구들은 그 뱀의 꼬리를 잡아 빙빙 돌리다가 하늘 높이 던지는 장난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필자는 어릴 적부터 워낙 뱀이 무서워 그런 장난을 하지 못했으며 등하교 시 골목길에 뱀이 나타나면 잠시 몸이 경직되고, 그 뱀이 지나가서야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처럼 뱀은 기어 다니는 행태와 독성 때문에 징그럽고 오랫동안 인간들에게 두려움이 대상이다. 하지만 새끼를 많이 낳아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며, 꿈에 뱀이 나오면 재물이나 자녀를 얻을 징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이브를 유혹해 선악과를 먹게 한 존재로 유혹과 죄의 상징으로 표현되면서 서양문화에서는 뱀이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중세 유럽에서는 뱀을 교활함과 속임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불신을 부추기는 존재로 자주 등장했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와 달리 긍정적 이미지도 많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뱀이 지혜와 치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그리스 신화의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醫術)의 신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항상 뱀이 똬리를 튼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뱀이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모습은 새롭게 태어나는 재생의 힘을 가진 상서로운 존재로 여기며 회복과 지혜를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의 로고에도 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설(傳說) 등에 등장하는 뱀의 이미지도 숭상과 두려움, 이중적이다.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육십갑자(六十甲子) 중 을사년(乙巳)으로 ‘푸른 뱀’의 해라고 불린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시간체계인 육십갑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을(乙)’은 청록색(푸른색), ‘사(巳)’는 뱀을 의미한다.
뱀이 십이지(十二支)의 동물에 포함된 것을 보면 징그럽고 무섭다는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지혜, 재생 등 긍정적 이미지가 더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다. 뱀은 십이지 12마리 동물 중 여섯 번째 동물로 동양철학과 전통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뱀은 지혜와 재생, 그리고 변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뱀이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모습은 새로운 시작과 성장을 상징한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그리고 29일 제주항공 여객기의 무안공항 참사 등 참으로 참담한 사건과 함께 2025년이 밝았다.
2025년 을사년 한해는 푸른 뱀의 지혜와 기적 같은 치유의 힘이 모두에게 함께 깃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