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속에서 계란은 북어만큼 중요하지 않다. 닭만큼 중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분명한 상징을 지니며, 역시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이다.
전편에 북어가 왜 중요한 기물인지 설명했다. 계란은 반대의 방향으로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무슨 말이냐. 북어는 혼기(魂氣)는 날아갔지만 형백(形魄)은 보존된 기물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존재다. 계란은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될 운명이다. 하지만 인간의 뜻에 따라서는 죽어 있는 식재료나 마찬가지가 되기도 한다. 역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다.
살지도 죽지도 않은 존재지만, 계란은 북어와 성격이 반대다. 태어나 자라서 활동할 잠재력을 모두 품고 있다. 즉, 살아있는 것의 형태는 없지만, 형태의 설계도는 있다. 형백은 없지만 혼기는 있는 것이다. 자, 정리해 보자.
혼기는 없지만 형백은 있는 북어.
혼기는 있지만 형백은 없는 계란.
무속에서 두 기물은 서로를 보완하고 완성한다. 사람이 재액이나 살을 맞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귀신에게 사람 대신 북어를 제공하는 '대수대명'을 할 때, 계란을 함께 사용하면 대수대명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논리다. 재액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사람의 옷에 북어와 계란을 넣는다. 액받이는 말 그대로 액을 대신 받아내는 것이다. '북어+계란' 조합은 귀신을 유혹하기에 더 좋다. 살아있는 사람의 조건인 혼기와 형백을 모두 지녔으니까.
노상원 집 입구에 놓인 북어
계란을 액받이로 쓸 경우, 귀신의 악의든 불행의 기운이든 사람이 피하려는 그것은 계란 안에 일시적으로 들어간 상태가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빠져나올 여유를 주지 않고 파괴하거나 봉인해야 한다. 그래서 액받이에 쓴 계란은 땅에 파묻거나 깨트려버리는 게 정석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십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트럭이나 경운기를 장만하면 '차 고사'라는 걸 했다. 차량 앞에서 고사를 지내는 것인데, 돼지고기와 시루떡 등을 올려서 치성을 드리는 것이다. 물론 저 맛있는 제물은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핑계 김에 동네잔치 하는 거다. 그러나 무속적 의미는 분명하다. 액막이다.
다시 말하지만, 액막이와 액받이는 다르다. 차 고사는 기본적으로 신령과 조상에게 사고를 막아달라고 부탁드리는 행위다. 그러나 액막이하면서 액받이도 하면 1석 2조일 것이다.
보통 고사 마지막에 차 바퀴에 술(주로 막걸리)을 뿌리는데, 그러고 나서 고사상 옆이나 차량 좌석, 혹은 운전자의 주머니에 있었던 계란을 꺼내 바퀴 앞에 둔다. 그리고 차량을 조금 앞으로 이동시켜 바퀴로 계란을 깨 버린다. 고사 음식을 제사상이 아니라 바가지에 담아 올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바가지를 같은 방식으로 깬다.
굿판과 마찬가지로 고사에도 신령만 모이지는 않는다. 배고픈 잡귀도 모여든다. 음식을 먹고 싶고, 사람의 몸을 차지하고 싶어 입맛을 다시는 잡귀를 바가지와 계란에 담았다가 부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때 계란에 담는 것은 잡귀뿐 아니라 '액' 그 자체이기도 하다. 가령 1톤 포터를 장만한 김 씨가 이 트럭을 운전하다가 한 번은 크게 다칠 운이라면, 그 액운을 계란에 받았다가(액받이) 소멸시키는 개념이다.
다른 문화권의 경우
인간의 기본적인 관념은 다르지는 않다. 고대 그리스 축제에서는 도시나 마을에서 가장 못생긴 사람을 뽑아 집단 폭행하고 추방하는 의식을 아주 '신나게' 치렀다. 이렇게 뽑힌 사람을 파르마코스라고 한다. 이는 그해의 모든 재수 없는 것들을 파르마코스에 담아 눈앞에서 치워버린다는 무속적 관념이다. 전형적인 대수대명이다.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하지만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스스로 얼마나 선진적이라고 생각했겠나. 원래 파르마코스는 추방이 아니라 살해당하거나 희생제물로 쓰였을 운명이었을 테니 말이다. 과연 그리스다. 고대 기준 매우 인도적이었으니 말이다.
한국 무속도 파르마코스 추방처럼 안팎을 구분해, 집안의 재액을 집 밖으로 전가하는 비방이 많다. 대표적으로 지갑이나 주머니에 집주인의 머리카락과 손톱, 돈을 넣어두고 밖에 버리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아닌 한 사람의 파르마코스처럼, 집주인 자신이 아닌 신체의 일부를 추방하는 행위다. 물론 재액은 그 돈을 주워간 사람에게 옮겨붙겠지.
조선시대에는 제웅(=허재비)을 만들어 그 안에 동전을 넣고 길에 버리는 관습이 있었다. 길 가던 아이들이 제웅의 배를 갈라 동전을 가져가면 집안의 재액이 떠난다는 관념이다. 그런데 이건 순진한 아이들에게 불행을 전가하는 못된 방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재미난 의식 같은 거였다. 애들은 애들대로 '일시적으로' 자기에게 붙은 재액을 털어내는 비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관념이 서구권에 관습으로 남은 경우가 할로윈이다. 아마도 켈트족의 관습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할로윈 날 아이들은 귀신으로 변장하고 사탕을 삥뜯고 다닌다. 이때 사탕은 한국 무속에서 계란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럼 그 사탕을 먹는 아이들이 잘못되는 건가? 아니다. 재액은 귀신 분장을 벗을 때 함께 벗겨진다는 논리다.
즉, 인간의 관념은 동서고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노상원의 점집과 관련한 이야기는 크게 다르다. 이 인간은 뭘 해도 상식을 벗어난다.
노상원의 계란
노상원 전 사령관이 머물던 점집
노상원네 점집은 신기하게도 계란을 과소비하는 집이다. 알려진 바로는 도매업자에게 한 번 주문할 때 3~40판씩 주문했다고 한다. 30판이면 900알이다. 대관절 그 많은 계란을 뭐에다 쓴단 말인가...?
액받이 작업을 900번이나 대신 해준단 말인가? 아니면 계란 900개를 쓰면서 북어도 900마리를 짝지어 쓴단 말인가? 어느 시간에? 말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계란을 그렇게나 많이 샀으니, 어딘가에는 썼을 것이다. 버리려고 산 건 아닐 거다. 그럼 대관절 어디에 사용했을까?
지난 24일, 서울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노상원 전 사령관
첫째 가설, 자잘한 비방
예컨대...
"내가 딱 이래이래 작업을 해둔 계란 다섯 알을 사가서 집 기준 동서남북에 던져서 깨트리고 남은 하나는 베란다 화분에 묻으라 이 말이야~ 어이?"
이렇게 계란 비방을 열심히 팔았을 수도 있다. 참고로 내가 아는 한 이런저런 자잘한 비방을 열심히 팔아제끼는 무당치고 큰무당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900개를 팔려면 어디다 어떻게 팔아야 할까?
둘째, 유통
허경영이 하늘궁에서 축성했다는 우유인 '불로유'처럼 무속적 효능을 '가공'해 대량으로 팔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것도 아니고 사들인 계란을 더 좋은 계란으로 적당히 사기를 쳐서 차익을 남겼을 수도 있겠다.
셋째, 자신을 위한 비방
함께 점집을 운영하는 노상원의 동업자는 원래부터 무속인이었다. 무속적 원리에 따라 계란을 이용했다면, 자신의 안전과 큰 일의 성공을 위해 대량의 계란이 필요할 수도 있는 일이다. 계란은 재액을 막는 액받이로도 사용되지만, 계란이 가진 고유한 특성 때문에 남을 저주하거나 살을 날리는 비품의 역할도 한다.
큰 악행을 저지르거나 준비할 때는, 그만큼 액받이와 저주 등 밑 작업의 사이즈가 커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내란 동조와 같은 거대한 작당모의라면 말이다.
아무튼 어떤 경우에라도, 주문 한 번에 3~40판짜리 계란이 온전히 소비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노상원이든 동업자든 제대로 된 무당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어디선가 강하게 풍겨오는 이 사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역술과 신점
역술과 신점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사주, 명리, 역점을 보는 이들은 역술인이라고 한다. 나도 역점을 볼 줄 아는데, 그렇다고 무당은 아니다. 사주(=명리)는 일종의 CPU다. 컴퓨터는 입력과 결과를 기본으로 한다. 이미 조직된 이론에 태어난 연월일시를 입력(input)하면 기존의 공식에 따라 처리되어 그 사람의 운세가 도출(output)된다는 개념이다.
역점은 경우의 수를 뽑는 것이다. 주역 64괘에 괘사에 더해 각 괘에 속한 6가지 효의 386종류의 효사, 그리고 용구+용육 중 하나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걸 잘 해석하면 된다. 즉, 역술은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우주의 원리를 읽어내는 방법론이다. 신령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신점의 경우, 무당이 자신이 직접 모시거나 관계하는 신과 접촉해(한 마디로 '접신') 신으로부터 점사를 전해 듣고 전달해 준다. 꼭 질문을 신에게 의뢰하지 않아도 손님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조상이 보인다거나, 앉자마자 방문한 목적을 알아맞히는 능력은 신의 작용에 의해서다. 신령과의 소통이든 자기의 신기이든, 아무튼 신적인 영역이다.
술(術 방법을 알고 실행함)과 매(媒 사이를 잇고 붙임)는 다르다. 역술가는 기술자다. 무당은 영매다. 무당도 태어난 연월일시를 물어보고 적고는 한다. 하지만 자기가 해석하는 게 아니다. 신령에게 맡기고, 자신은 전해 듣는 것이다.
자, 다시 노상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노상원과 무속
2년 전, 노상원 전 사령관의 점집을 방문했다는 후기 사진
출처 - (링크)
노상원은 역술가 행세를 할 때 자칭 사주 명리 역술을 '달통'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그 나이대 아저씨 중에서 사주나 주역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흔하다. 노상원은 1981년 육군사관학교 수석 입학자다. 공부 좀 잘했다는 할저씨들 책장에 가장 흔히 꽂혀있는 책이 <주역>이다.
사주와 역점은 잘 보는 게 어렵지, 보는 거 자체는 그냥 책 사서 공부하면 된다. 옛날에야 한자 하나까지 순서대로 달달 외워야 했지만, 지금은 프로 역술인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사주 명리를 모르니 주역 이야기만 하겠다. 제7괘인 <지수사> 괘가 나왔다고 하자. 컴퓨터에 지수사를 치면 괘사와 효사, 상전과 단전(신경 쓸 것 없다. 그냥 그런 게 있다...)의 해석이 좌르륵 나온다. 용하기로 소문난 직업 역술인들도 다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끼고 앉아 있다. 옛날엔 우리 모두 전화번호를 수백 개씩 외우고 다녔지만, 스마트폰이 있는 지금은 아무도 외우지 않는 것과 같다.
노상원이 점을 퍽 칠 줄 알았다는 건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신점'을 봤다는 증언이 보도된 내용을 보면 손님은 노상원에게 '꿰뚫어 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며, 찝찝한 기분을 숨길 수 없어 다시는 신점이란 걸 보지 않겠다고 한다. 어째선지 전혀 다른 역술과 신점이 뒤섞여있다. 이 직업에 있어 노상원은 근본도 체계도 없어 보인다.
취재 중에 만난 강력반 형사와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도, 형사에게 꿰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강력반 형사로 연차가 쌓이면 그 정도 포스는 뿜게 마련이다. 노상원은 국군 초엘리트만 모인 777사령부의 수장이었고, 무려 정보사령관 출신이다. 꿰뚫어 보는 느낌 정도가 그에게 없었을까.
출처 -
더군다나, 노상원은 여기저기 점을 보고 다녔다. 군산의 유명한 무당한테서는 윤석열이 탄핵당한다는 점사를 받고 나서도 쿠데타 성공을 확인받고 싶어서 여기저기 다닌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신기하게도 윤석열의 쿠데타와 탄핵을 미리 맞추는 모습이 공개된 무속인들이 여럿 있다). 특히, 김용현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진짜 역술가가 맞으면, 직접 보면 되지 왜? 역술과 접신은 원리가 다르니까 오케이. 근데 그러면, 동업한 '아기보살'에게 물어보지 왜 다른 데를 다녔을까?
참고로, 아기보살이란 명칭은 신내림을 통해 동자신을 모셔야지만 가질 수 있다. 강신무란 얘기다.
노상원은 제대로 된 역술가가 아니며, 동업자인 '아기보살' 역시도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닐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사기꾼일 수도 있다. 혹은 모시는 신령의 능력이나 본인의 신기가 미약한 무당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한때는 온전한 강신무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신이 떠났을 수도 있다. 잡귀를 신령으로 잘못 알고 모시는 반무당일 수도 있다. 이렇게 신령 행세를 하는 귀물을 '허주'라고 한다.
취재 보도 사진을 보니 말린 쑥 가지고 부정 태우는 비방도 팔았던 모양인데, 이런 건 문방구에서 딱지 파는 것과 비슷하다. 비방은 방법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편이다. 비방에는 무당이 모시는 신령도, 무당의 신기도 따로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방 중에 너무 잘 알려져 더는 비방(秘方 비밀 방편)이 아닌 방편도 많다. 대표적인 게 재수 없는 사람 나간 자리에 소금 뿌리는 관습이다.
안산의 아기보살은 그 수준이 어떻게 됐던, '동업자인 노상원이 믿지 못할 정도'의 실력임은 분명하다. 자 이제 힌트는 다 나왔다. 다음 편에서 결론을 짓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