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실내에서 여전히 식물을 심고 키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오는 ‘호주매화’라는 식물이 있다. 분홍 꽃을 피워 긴 시간은 아니어도 집안을 화사하게 빛내주는 겨울 실내식물이다. 뉴질랜드와 호주 남반구에서 자생하는데 마오리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식물이었다. 이른바 개척식물로 황폐한 땅에서 싹을 틔우고 촘촘한 잎과 줄기로 수많은 작은 새와 곤충의 서식지 역할도 한다.
특히 이 꽃에서 채취한 꿀을 마오리족은 ‘마뉴카’라고 했는데, ‘상처’라는 뜻이다. 사람들의 상처와 염증, 배앓이 치료에 쓰였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나 호주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마뉴카 꿀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텐데, 정작 이 식물이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건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마오리족에게만 마뉴카같은 식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아낌없이 주는 식물들이 많다. 매실이 그러하고, 참나무·소나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식물이 인간의 삶을 복되게 하자고 이런 베풂을 선택했을까? 그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식물도 그러할 뿐이다. 하지만 이 냉정한 진실 속에도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 다른 생명체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생명체가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뉴카 나무는 많은 것들을 베풀어 준 탓에 마오리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정원에선 집을 지키는 울타리로, 숲에서는 보호종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다른 생명체에게 준 베풂이 자신을 지키는 대가로 찾아온 셈이다.
내 집 정원에 고작 몇 안 되는 식물을 키우면서 가끔 내 삶도 거기에 투영해보곤 한다. 혹여 나의 치열한 삶이 그저 나만 좋자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나의 삶이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일이기도 해야 함을 되새겨 본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