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주 부재가 낳은 투자업계의 암흑기

2024-10-21

‘성장주’의 사전적 정의는 향후 성장성이 커서 현재보다 기업가치가 훨씬 커질 가능성 높은 주식이다. 그에 반해 ‘가치주’는 성장성이 낮아 기업가치의 상승 여력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안정적인 사업성과에 기반을 둔 꾸준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을 가리킨다. 당연하지만 국가별로 그리고 시기별로 성장주와 가치주에 포함되는 주식 리스트는 변하기 마련이다.

그간 성장주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주도해왔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글로벌 경제에서 안정보다는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성장이라는 임무에 충실하며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지속해서 새로운 성장 산업을 찾아 변모해왔으며, 그 결과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부분은 글로벌 성장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현시점에서 그 리스트를 살펴보면, 삼성전자·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LG에너지솔루션·포스코홀딩스·에코프로비엠으로 대표되는 배터리,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대표되는 전기차,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알테오젠으로 대표되는 바이오 기업들이다. 이들은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전 세계의 막대한 잠재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수출에 집중한다는 명확한 공통점을 가진 기업들이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처한 현실이 ‘성장’ 측면에서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분명 글로벌 시각에서 해당 산업들의 향후 성장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개별 기업들이 그 과실을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공존한다. 반도체 산업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주장하는 ‘반도체 겨울론’의 영향으로 위기설에 빠져 있는 삼성전자와 이른바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기차와 배터리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그 틈을 타고 가치주의 대명사인 금융회사들이 다시 시가총액 상위권에 다수 진입한 상황이다. 한동안 가치주로도 인정받지 못했던 식품·화장품 등 일부 소비재 산업들이 K푸드·K뷰티 열풍에 따른 폭발적인 수출 증가에 힘입어 새로운 성장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갈 새로운 산업군과 기업들은 보이지 않는다.

플랫폼·게임·엔터테인먼트·핀테크·제약·AI·로봇 등 최근 기대를 받는 분야들은 해외 진출 실패, 수익 모델 부재, 과도한 비용 구조, 임상 실패, 전문 인력 부족, 한·중 경쟁 등 저마다 한계에 부딪혀 있다. 이는 비단 주식시장만이 아니라, 벤처부터 바이아웃 단계에 이르는 투자 업계 전반에도 큰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볼멘소리를 경청할 때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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