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위안 형의 절규

2025-06-01

중국은 늘 두 얼굴이다. 언제나 음(陰)과 양(陽)이 교차하며 참모습을 보기 어렵다. 지난달 25일 중국 항저우에선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기 대회가 열렸다. 중국 과학굴기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정작 중국의 민심을 엿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은 ‘800형(800哥, 월급이 800위안인 형)’ 사태로 요동쳤다.

지난달 20일 점심 무렵의 일이다. 중국 쓰촨성 이빈시의 진위(錦裕)방직공장에서 큰불이 났다. 37시간 계속된 화재는 수천만 위안의 피해를 낳았다. 방화였다. 전 공장직원 원(文)씨가 불을 지르고 공장장을 흉기로 찔렀다. 다행히 공장장은 생명엔 이상이 없었다. 한데 27세의 원씨는 왜 이처럼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생활을 하던 원씨가 밀린 임금 800위안(약 15만원)을 받지 못해 벌인 사건이란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이후 원씨는 인터넷에서 ‘800형’으로 불리며 광범위한 동정 여론을 낳았다. 월급이 고작 800위안인가, 나도 임금체불 당한 적 있다 등과 같은 글이 쏟아지며 원씨는 일약 악덕 업주에 맞서는 노동 영웅으로 떠올랐다. 심상치 않은 여론에 놀란 중국 경찰이 재빨리 원씨의 월급은 4000위안대이며 퇴직 절차에 따라 나머지 임금은 모두 정산된 상태라고 밝혔으나 민심은 쉽게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다.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노동자가 정작 법률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법관과 노동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좌절한 노동자가 불을 지르는 등 극단의 수단을 써야 경찰도 오고 법관도 나타난다’는 조롱조 글이 이를 대변한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체불임금 사태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이번 사건도 한 예다.

진위방직공장은 원래 저장성 자싱시에 있다가 더 싼 임금을 찾아 쓰촨성 이빈시의 핑산현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완전한 해법은 아니었다. 이들 중국 소도시에 위치한 공장들은 더 싼 임금의 동남아 공장들과 경쟁해야 한다. 중국 기업가들이 트럼프의 관세보다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들의 공장을 더 신경 쓴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의 눈부신 기술굴기 이면엔 여전히 고달픈 민초들의 삶이 배경화면처럼 깔려 있는 것이다.

“내가 살고 죽는 건 상관없다. 그러나 너만큼은 꼭 죽여야겠다.” 공장장을 향해 독기로 가득 찼던 원씨의 절규다. 체불임금 문제가 비단 중국만의 문제일까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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