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경선 이기자 연희동 갔다…노태우 뒷담화 쏟아낸 전두환

2025-08-20

노태우 비사

제4부. 정치 9단 김영삼에 휘둘리는 노태우

6회. 노태우 ‘김영삼 지지’에 김종필 ‘무조건 동조’

노태우에 ‘김영삼 후계’ 설득한 이만섭

모호하던 노심(盧心, 노태우의 마음)은 1992년 4월 8일 분명해졌다. 노태우는 이날 오후 6시 김종필 최고위원과의 회동에 앞서 오후 3시30분 이만섭 의원을 청와대로 불렀다. 노태우는 두 사람을 만난 다음 날인 9일 김영삼과 만나 대선후보 관련 최종 담판을 지을 계획이었다.

이만섭은 대구 출신이지만 경북고·서울대가 아니라 대륜고·연세대 출신인지라 TK 본류에서 살짝 벗어난 원로급 정치인이었다. 동아일부 정치부 기자 출신 이만섭은 노태우에겐 귀한 ‘직설 멘토’였다. 이만섭은 1980년 전두환이 설계한 ‘제2 야당’ 국민당 대표를 맡아 신군부와 가까웠다.

노태우는 ‘현장의 소리’를 전하는 그를 좋아했다. 이만섭은 1987년 6·29 직전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선후보를 만나 ‘직선제 개헌해도 이긴다’는 확신을 불어넣었다. 직선제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김대중을 사면복권시키는 것이 ‘필승전략’이라고 설득했다. 노태우 집권 이후 이만섭은 ‘김영삼 대세론’을 요리조리 주입했다. 이만섭은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소장파 김영삼과 가까웠다.

이만섭은 4월 8일에도 ‘김영삼 대세론’을 역설했다. 간단히 말해 ‘김영삼이 경선에 불복해 탈당하면 김대중이 대통령 된다’는 얘기다. ‘민정계 후보가 김대중을 이길 수 있다’는 강성 TK들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박정희 이후 30년 장기집권해온 TK 정권을 이어갈 후보가 없다는 ‘대안부재론’이다. 정권 상실 이후 안전을 고려하자면 ‘김대중보다 김영삼’이라 주장했다. 이만섭은 방을 나서면서 “김영삼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고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후 6시 노태우는 김종필과 만나 2시간30분 동안 만찬을 함께 하며 얘기를 나눴다. 김종필은 노심을 확인하고 ‘무조건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김영삼 지지에 동조한 것이다. 김영삼의 총선 패배 책임론을 주장하며 칩거해 왔던 김종필의 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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