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정치, 허대만

2025-08-20

경북 포항에서 더불어민주당 깃발을 들고 정치를 한다는 건 “악마의 맷돌에 인생을 갈아넣는 일이었다”. 2022년 8월22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허대만 전 경북도당위원장의 말이다. 1995년 지방자치가 부활하자마자 고향 포항으로 달려온 그는 그해 전국 최연소 시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치러진 7번 선거에서 모두 낙선했다. 출마, 낙선, 출마 또 낙선이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그는 민주당 옷을 벗지 않았다. 예견된 패배를 조롱하듯 “딱 한 번만 눈감고 무소속 출마도 고려해 보라”는 제안이 그를 흔들었다. 하지만 유혹이 강하면 강할수록 ‘악마의 맷돌’을 더 세게 움켜쥔 그는 ‘과메기도 (국민의힘 계열)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민주당 험지에서 정치 인생 30년을 갈아넣었다. 그 ‘악마의 맷돌’은 지역주의였고, 승자독식 선거제였다.

그의 허망한 죽음 후 지역 1당 독점을 강화하는 소선거구제를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의 못다 한 꿈에 응답하듯 ‘허대만법’이란 이름이 붙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개정안을 내놓고, 국회의장도 선거법 개정 전원회의를 열었다. 정치권은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 지역정당 허용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허대만법’은 거대 정당 중심의 양극화·진영 정치 벽에 번번이 부딪혔다. 민주당만 해도 김대중표 동진정책, 노무현표 전국정당화의 맥이 끊긴 상황에서 대구·경북은 정치적 동토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과 호남 두 지역에서라도 ‘허대만법’ 불씨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다시 나온다.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의 무투표 당선자 30%가 이 두 지역에서 나왔다. 전국이 어렵다면 이 두 곳에서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는 게 허대만의 유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지역주의 극복은 공존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시밭길”이라 했던 그의 여정을 담은 추모문집 <공존의 정치>도 20일 출간됐다.

3주기면 슬픔과 그리움이 덜해지는 ‘탈상’의 시기다. 비록 허대만은 현실 정치에서 패배했지만, 허대만의 정치는 실패하지 않았음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의 탈상을 맞는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