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20년 집권론, 허풍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2025-08-20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언행은 물리학을 닮았다. 힘은 곧 숫자라는 단순한 원리를 정치 언어로 옮겨놓는다. “악수는 사람하고 하는 것”이라는 막말의 바닥에는 “우리가 다수인데 어쩔 거냐”는 힘의 논리가 깔렸다. 그의 거친 발언은 무례라기보다 계산이다. 당내 강성 팬덤의 환호를 끌어내 당내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 작동한다. 이 계산으로 당대표 선거에서 ‘명심’을 업었다는 박찬대를 제쳤다.

이런 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10개월 남았다. 굳이 중도층을 의식하며 몸을 낮출 이유가 없다. 대통령 지지율이 50% 초반까지 내려왔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40% 언저리를 유지한다. 핵심 지지층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을 겨냥한 세 개의 특검도 가동되고 있다. 대통령 이재명의 정치가 있듯 정청래 역시 자기 정치가 있다.

퇴행적 좀비 야당이 여당의 자산

인구 구조마저 점점 보수에 불리

국민의힘 이렇게만 나와 준다면

민주당의 장기집권 문제없을 듯

정청래의 진짜 우군은 국민의힘이다. 막말이라도 국민의힘을 겨눌 때면 “오죽하면”이라는 반응이 따라붙는다. 정치의 상대성 때문이다. 오히려 정청래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국민의힘의 퇴장이다. 생태계에서 피식자가 멸종되면 포식자도 함께 사라지듯, 정치가 과도하게 일방적이 되면 강자의 자리도 좁아진다. 하지만 당분간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듯하다. 내일(22일) 전당대회 결과를 봐야겠지만, 지금 국민의힘의 판세는 반탄(反彈)파가 유리하다. 국민의힘이 지역 정당으로 전락해 생태계의 잔존종(殘存種)처럼 연명할 공산이 크다는 이야기다.

7년 전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론’은 허세처럼 들렸다. 지금은 그렇게만 치부하기 어렵게 됐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가 산 채로 먹잇감이 되듯, 과거의 유령에 사로잡힌 보수 야당이 집권 민주당의 영양원이 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민주당이 가장 원하는 구도다.

정치는 상대적이다. 여당의 독주는 야당의 무능이 동반될 때 현실이 된다. 미국 민주당과 일본 자민당의 경험이 그랬다. 2차대전 후 주요 선진국에서 특정 당이 20년 이상 집권한 사례는 드물다. 그 드문 사례를 선사한 집권당의 파트너는 시대에 뒤떨어진 야당이었다.

미국 민주당은 1932년부터 68년까지 치른 대선 아홉 번 중 일곱 번을 이겼다. 루스벨트와 트루먼이 연달아 다섯 차례 승리했다. 공화당의 승리는 2차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가 출마한 1952년과 56년뿐이었다. 하원은 이보다 더해 1930년 이후 64년간 단 4년을 빼고 민주당이 차지했다. 대공황 시기에 도시 노동자, 흑인, 이민자, 지식인, 농민까지 포괄한 ‘뉴딜 연합’의 힘이었다. 반면에 공화당은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도 작은 정부와 긴축을 고집하며 민생에 둔감했다. 후버 정부의 실패 책임론에 묶여 새로운 유권자층을 끌어들이지 못했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낳은 변화를 외면했다. 민주당이 새로운 유권자층을 흡수할 때, 공화당은 낡은 지지 기반에만 기대며 고립을 자초했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 집권도 마찬가지다. 1955년 창당 이후 지금까지 두 차례 합쳐 4년 남짓만 야당에 정권을 내줬다. 자민당이 특별히 유능했다기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야당의 영향이 컸다. 사회당은 1970~80년대 고도성장과 소비사회 시기에도 평화헌법 수호, 반(反)자위대, 반(反)미군기지 구호만 붙들고서 중도 유권자와 괴리됐다. 사회당 몰락 후에도 야당은 끊임없는 난립과 재편으로 집권의 문을 스스로 닫았다. 버블 붕괴와 정치개혁 바람 속에서도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대가였다.

한국 정치 지형은 갈수록 보수에 불리해지고 있다. 민주화와 노무현 열풍을 경험한 40·50대가 지금 정치의 중심층이다. 2024년 기준 이 연령층은 전체 유권자의 36%를 차지한다. 이들은 나이를 먹어도 쉽게 보수로 이동하지 않는다. 반면에 고령층은 자연 감소 중이다. 게다가 수도권 집중도 더 심해지고 있다. 인구 구조가 민주당에 점점 유리해지는 셈이다. 순간의 이슈는 표심을 흔들 수 있지만 구조적 조건은 바뀌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혁신을 미룰수록 불리함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당정 메시지는 따로 놀고, 대통령의 통합 메시지에 물음표가 붙기 시작했다. 다수당의 독주는 지지층에겐 통쾌하겠지만 중도층에겐 오만으로 비친다. 오만은 정치에서 늘 추락의 전조였다. 미국 민주당은 ‘엘리트의 잘난 체’ 이미지에 갇혀 이단아 트럼프에게 졌다. 일본 자민당은 고인 물 이미지와 부패 스캔들로 정권을 내준 바 있다.

정치는 숫자의 게임이다. 그러나 숫자는 고정돼 있지 않다. 오늘은 “그래도 된다”가 통하지만, 내일은 “이제 그만”이 돌아올 수 있다. 야당의 무능과 퇴행이 여당의 호기가 될 수 있다면, 여당의 오만은 몰락하는 야당의 구명줄이 될 수 있다. 전형적인 제로섬 정치다. 그 대가는 결국 국민이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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