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이라는 젠더 현기증

2025-08-20

버락 오바마는 2009년 대통령 취임식 이틀 전,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했다. 평등한 교육 기회라는 정책 목표를 제시하는 동시에 다정한 아버지의 면모를 드러낸 편지는 당선 직후 행보란 점에서 고도의 정치적인 전략이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공격적이고 강인한 남성적 이미지를 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포용적이며 협력하는 여성적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상류층 이성애자 백인 남성을 모델로 삼는 헤게모니 남성성과 차별화하면서도, ‘분노하는 흑인 남성’이라는 낙인찍힌 이미지를 피하고자 부드러운 여성성이라는 코드를 채택했으리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국 정치에서도 정치 성향과 젠더는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매트릭스다. 윤석열 정부 탄생의 주요 변수로 안티 페미니즘과 공정 담론을 등에 업은 20~30대 청년 남성의 우경화가 꼽히면서 ‘보수=남성성/진보=여성성’이라는 암묵적인 젠더 공식이 공고해지고 있다. 이처럼 단순한 프레임은 몇가지 한계를 지닌다. 첫째, 청년 남성을 역사 변동의 결정적인 주체로 과잉 대표화해 내란·탄핵 국면에서 실질적 변동을 이끌어낸 아이돌 팬, 성소수자, 농민 등 다른 집단의 영향력을 축소한다. 둘째, 결혼·출산·양육 중심의 생애 주기에 있는 청년 남성의 특권적 지위를 과장해 이성애 가부장 중심의 재생산 구도를 고착화한다. 셋째, 남성 집단 내부의 세대, 계급, 지역, 학력 등 조건을 비가시화한다. 이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남성’이라는 획일적인 이미지 재현을 강화하며 남성성 자체가 거대한 사회적 억압의 일부라는 사실을 가릴 수 있다.

동시대 한국 남성들이 특정한 형태의 불안을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어떤 불안인가? 가정과 사회에서 명백히 ‘한국 남자’로 양육되어 좋든 싫든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동시에 일반적인 ‘한국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분열적인 불안이다. 즉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실천해야 하는 동시에 부인해야 하는 교착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구조적인 성차별과 여성혐오 범죄가 폭발적으로 담론화되면서 ‘한국 남자’라는 정체성이 ‘한남’이라는 멸칭이 되어 대중적으로 확산했다. 이는 한국 남성 당사자에게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부정적으로 타자화되는 젠더적인 경험을 부여한다. 한국 남성들은 ‘한남’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남성 동성 사회에서는 경쟁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남성성을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는 감추거나 부정해야 한다는 혼란, 자신의 진정성이나 선의가 오해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복합적으로 느낀다. 이는 ‘나는 다른 남자와 다르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예외적인 존재로 위치시키는 자의식이나,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식으로 다른 세대의 남성들을 타자화하는 구별 짓기로 나타나며, 여성·소수자와의 결속이나 친분으로 자신의 비남성성을 입증하려는 행위로도 가시화된다.

기존의 남성성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부인되는 자기부정의 형태로 남아 남성성과 비남성성이 모순적으로 착종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새로운 형태의 남성성, 즉 ‘비남성성의 남성성’이라고 불러볼 수 있다. 바버라 리스먼의 용어를 빌리자면 일종의 ‘젠더 현기증(gender vertigo)’이기도 하다. 이는 남성성에 내재된 젠더 권력을 은폐된 방식으로 재생산하거나 기존의 남성성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차단할 수 있지만, 남성성과 젠더 권력이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징후를 드러내기도 한다. ‘비남성성의 남성성’이 드러내는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이 열어젖히는 젠더 균열을 성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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