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에 방향 잃은 정부
상속세 개편·밸류업 일단 멈춤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 삭감
2025년 경방 ‘尹 색깔빼기’ 관측
정부가 내년 경제정책 수립 방향을 잃은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그동안 추진해오던 정책 상당수는 ‘올스톱’이 예고됐다. 당장 국정 리더십이 약해지면서 반도체 산업 지원과 인공지능(AI) 산업을 위한 국가전력망 구축,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같은 사업은 좌초위기에 놓였다.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도 내년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된 채 표류 위기를 맞았다. 감세정책도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25년 만에 추진했던 상속세 개편안은 사실상 전면 중단됐고, 관련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도 국회에 묶여 있다.
당장 부처는 기존 정책을 밀어붙일 동력을 잃었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이 속한 부처는 ‘납작 엎드린’ 상태다. 당장 이들 국무위원은 내년 초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CES) 참석도 줄줄이 취소했다.
22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발표 당시부터 논란이 컸던 대왕고래 사업은 국회에서 내년 예산 497억원이 전액 삭감돼 시추를 맡은 한국석유공사의 재정적 부담이 커졌다. 제대로 된 시추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상속세 개편도 ‘일단 멈춤’ 상태다.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돼 다시 감세를 추진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유산취득세 전환 때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또 주식시장 부양을 위한 주주환원 촉진 세제 등 밸류업 프로그램도 대부분 폐기될 상황에 놓였다.
더불어 정부가 중점 추진한 반도체산업 특별법,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해상풍력 계획 입지 및 산업육성 특별법 등도 모두 국회에 묶여 있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달 말 발표 예정인 ‘2025년 경제정책방향’(경방)은 ‘윤석열 색깔’을 배제한 ‘면피용’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해마다 연말이나 연초에 발표하는 경방은 정부가 한 해 동안 어떠한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청사진을 담는다. 이번에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한 대응책과 대외신인도 관리를 위한 정책 등 당장 시급한 사안만 담길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처 장관 美 CES 참석도 줄취소
부처도 소극적 행정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세계 최대의 가전·IT 박람회인 CES 개막을 보름가량 앞둔 가운데 주무 부처 장관 대부분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근 참석을 취소했다. 오 장관은 지난달 여행사를 통해 항공권, 숙소 등을 예약했는데, 이를 김성섭 차관에게 양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참석을 검토했으나 지난 8일 면직 처분되는 바람에 실무진이 대신 참석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또한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장관 모두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무회의에 배석했으며 계엄 해제에 따라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경제계는 탄핵 정국으로 맞이한 ‘경제 컨트롤타워 부재’의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전날 최태원 회장 명의로 128개국 세계상공회의소 회장과 116개국 주한 외국 대사에 한국 경제의 안전성을 알리는 서한을 보냈다.
최 회장은 서한에서 “최근 일련의 어려움에도 한국 경제는 정상 작동하고 있다”며 “높은 회복탄력성과 안정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당면한 어려움을 빠르게 극복해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경제인협회는 회원사에 공문을 보내 내수 활성화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송년회·신년회 등 행사와 모임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임직원의 잔여 연차 사용을 권장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채명준·이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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