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내 아파트 건설 현장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세다. 건설 현장만이 아니라 농촌에서 일하는 농부도, 어촌에서 일하는 어부도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되고 있으니 이상할 것이 없다. 현장 식당에서도 밥 먹을 때 한국말보다는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린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도 베트남 노동자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중국 노동자, 그 외에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인들이 섞여 있다. 전체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보다 5배는 더 많다. 건설 현장에선 한국인 노동자들이 소수자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인한 생산 인력 감소에 따른 노동력 확대를 위해 정부가 이민자 확대 정책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당연한 준비지만 인구가 줄어드니 해외 인력으로 채우겠다는 산술적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사람을 대하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속된 말로 ‘나는 편하고 즐기는 삶을 살 테니 힘든 일은 네가 대신 와서 일해라, 돈은 충분히 주겠다’ 이런 마인드라면 외국인 노동자가 늘수록 사회 갈등만 심각해질 것이다.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건설 현장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져 한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하지만 이건 틀린 말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려는 한국인이 없으니 그 자리에 외국인이 들어온 것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성실히 일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빠지기 일쑤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안 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건설 현장이라 하더라도 이런 사람은 쓰기 어렵다.
건설 현장에서 원청으로 불리는 종합건설사나 단종으로 불리는 전문건설사나 건설에 투입되는 인력을 직접 뽑지는 않는다. 각 공종별 팀(회사일 수도 있음)과 계약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인력은 이 팀장들이 확보한다. 이들의 인맥을 통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현장에 인력을 채우게 된다. 회사는 이 팀장들을 통해 인력 관리를 하고 있어 현장에서 언어 문제나 작업 숙련도는 전적으로 이 팀장의 손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고 해서 현장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성실하게 일한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인 노동자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우리 현장에서 벽돌이나 시멘트를 나르는 일을 하는 로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그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이곳이 일반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는 것보다 급료가 더 낫기 때문이다. “회사에 취직하면 매월 350만원 받아요. 그런데 여기서 일하면 자기 하기 나름이지만 월 700만원에서 800만원을 벌 수 있어요. 내가 일한 만큼 벌 수 있으니 저는 이 일이 더 좋아요.” 청소 작업을 하는 또디득은 베트남에서 왔다. 매우 성실하게 일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언제나 웃으며 인사를 해 상냥한 인상을 준다. 같은 팀의 베트남 남성들은 철근이나 해체에서 일한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다들 꺼리는 분야들이다.
힘든 직업 외국인도 기피할 것
전문화·숙련화 교육 확대 필요
고급인력 오고싶은 나라 돼야
영국의 구르카 용병 모델 참고할 만
앞으로 한국사회는 더 노령화되고 젊은 사람들의 건설 업계 유입은 더 적어져 부족한 노동력을 외국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더 심화할 것이다. 어쩌면 외국인 노동자도 힘든 건설업계는 외면할지도 모른다. 노동자의 전문화와 숙련화를 위해서는 교육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건설 현장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능력을 키우는 사람에겐 더 많은 혜택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영국이 쓰고 있는 네팔의 구르카 용병을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저개발국가에 건설기초교육을 할 수 있는 직업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임금수준이면 저개발국가 젊은이들에겐 매우 좋은 조건이다. 직업학교를 세워 우수 학생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출산율 저하는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인력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 필요한 인재는 처음부터 키워야 한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것은 기존 경제 구조를 전복시킬 수 있는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폭발에서 온다고 했다. 그는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 역동성이라고 했다. 이렇게 이끌어 가는 사람을 기업가 정신이라고 했다. 이는 개인 기업가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 이런 혁신을 이끌어 가는 기업가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직업 귀천 따지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철학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바로 니체다. 그가 말한 초인, ‘위버맨쉬’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체제하에서 몰락한 인간으로 정신의 한계, 현실의 한계,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 재창조된 새로운 인간을 말한다. 이런 인간을 우리는 홍익인간형 인간이라 하든, 근대적 시민이라 하든, 아니면 현대적 선비라고 불러도 좋다. 한국이 그런 국민을 만들겠다는 국가의 비전을 만든다면 세계의 의식 있는 사람들은 한국으로 몰릴 것이다.
이제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또는 직업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데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그 사람이 가진 재능을 최대로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를 단지 단위 시간당 노동력 제공자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이 전제된 상태에서 이민을 확대한다면 고급 인력이 이민 오고 싶은 나라가 될 것이다.
이민 정책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우리와 동등한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프랑스가 신교도를 박해하여 수많은 신교도 기술자, 상공인이 네덜란드로 이주해 17세기 경제 중심이 네덜란드로 옮겨졌다. 청교도들을 포함한 수많은 신교도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거 아메리카로 이주하면서 패권이 미국으로 옮겨간 역사의 선례를 보며 우리도 세계인들이 코리안드림을 꿈꿀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두수 작가·건설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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