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꿈

2025-01-12

정치적 위기로 인한 혼란은 새 역사의 단초가 된다. 로마 공화정 말기 100년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부패와 내전으로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결국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로 500년 동안 지속한 로마 공화정은 막을 내린다. 그의 조카인 아우구스투스를 초대 황제로 한 로마 제국이 탄생했다.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14년까지 아우구스투스는 독재정치를 뿌리내렸다.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행정 개혁과 효율적인 인프라 건설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지방을 통합했다. 그러나 이어진 칼리굴라와 네로 황제의 통치는 음모와 무질서로 악명 높았고, 네로가 후계자 없이 자살하면서 로마 제국은 또다시 내전의 혼란에 빠졌다.

이어진 ‘네 황제의 해’는 격동의 시기였다. 서기 68~69년에 걸친 1년의 기간 동안 갈바·오토·비텔리우스에 이어 베스파시아누스(사진)까지 무려 네 명의 군 출신이 잇따라 황제를 자처했다. 그 결과 갈바는 오토의 기병 공격으로, 오토는 자살로 각각 생을 마감했고, 비텔리우스는 처형됐다. 결국 베스파시아누스의 승리로 혼란기가 매듭지어진다. 최초의 평민 출신 로마 황제였던 베스파시아누스는 실용적 리더십으로 제국의 안정을 회복했고, 경제·정치적 질서를 재구축했다.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글서글한 눈빛의, 이상화되지 않은 사실주의적인 초상을 채택한 것도 그였다.

그러나 로마의 이상은 어디까지나 공화정이었다. 황제로의 권력 집중은 결국 허망한 몰락을 부른다. 게르만족의 침입과 황제 정치 내부의 분열로 로마는 멸망하고 만다.

한국 정치사의 큰 물줄기는 권력 집중이 아닌 권력 분산의 길이었다. 계엄 사태는 황제의 꿈을 실현하려는 반동이었다. 민의와 헌법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진보와 민주의 길을 가던 나라에 이런 무리수는 설 자리가 없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