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의 클럽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1-13

“김대중(DJ) 전 대통령님은 재임 시절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YS)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과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기억납니다. 정치 보복은 없었습니다.” 2019년 8월18일 DJ 서거 10주기 추모식에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이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행한 추도사 일부다. 그가 언급한 사진은 DJ정부 임기 첫 해인 1998년 7월31일 청와대에서 촬영됐다. 역대 대통령 5명이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을 담은 것으로는 유일무이하다. DJ는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전직 대통령 초청 행사를 가졌으나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YS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사정권을 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더 이상 자리를 함께하기 싫다”며 불참했다.

당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개입을 부른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온 국민이 구조조정과 실업, 예금 잔고 바닥 등 고통에 시달릴 때였다. DJ는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며 “국난 극복을 위한 국가 역량 결집에 적극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문민정부 시대를 개막한 YS는 군사정권 지도자들과 같이 있는 게 불쾌했는지 침묵을 지켰다. 반면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부디 초지일관을 잊지 마시라”(최규하), “망국적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화해·협력의 시대를 열어 달라”(전두환), “명실공히 ‘제2의 건국’을 이루려면 대통령에게 힘이 필요하며 그 힘은 국민적 뒷받침에서 나올 수 있다”(노태우) 등 자신의 의견을 활발히 개진했다.

그로부터 27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전현직 대통령 4명이 살아 있다. 가장 연장자인 이명박(83) 전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무사히 마치긴 했다. 그러나 퇴임 이후인 2018년 비리 혐의가 드러나 영어의 몸이 되었고, 2022년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때까지 5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했다. 박근혜(72) 전 대통령은 2017년 헌정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따라 파면되는 오점을 남겼다. 그 또한 오랜 기간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2021년 12월 특별사면 후 정치적 고향인 대구로 낙향했다. 윤석열(64)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회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가 정지된 채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남은 임기를 채우긴 어려워 보인다. 문재인(71) 전 대통령 혼자 재임 기간에나 그 이후에나 비교적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이 네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 사례는 이제껏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 듯하다.

최근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국장(國葬) 영결식이 9일 열렸다. 생존해 있는 전현직 대통령 5명이 모두 모여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미국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빌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행사장 첫줄에 앉았고 그 바로 뒷줄에 재직 순서대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트럼프는 오는 20일 미국의 새 대통령에 취임할 예정이나 이날만큼은 당선인이 아닌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참석했다. 미 언론은 이를 ‘대통령들의 클럽’(Presidents club)이라고 부르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과거 선거 때마다 서로 헐뜯고 비난하며 앙숙으로 지냈던 트럼프와 오바마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미국에 부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정말 탄성을 자아내는 동시에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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