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나면 남한 넓이의 80%에 달하는 모하비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처음 만나는 도시는 모하비다. 한국에는 차량 이름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현대기아차 주행 시험장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항공 덕후’라면 항공기 무덤으로 유명한 모하비 공항에 관심이 갈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 끝없이 늘어선 풍력발전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거대한 ‘바람 농장(wind farm)’에서 총 4000여 개 터빈이 2200㎿(메가와트) 이상의 전력 생산력을 갖췄다. 지난해 한국의 총풍력발전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모하비사막을 건너 라스베이거스를 지나면 네바다와 애리조나 경계에 뉴딜 정책의 상징인 후버댐이 위용을 드러낸다. 소양강댐의 10배인 2080㎿에 달하는 용량을 지닌 수력발전소다. 후버댐을 지나 애리조나를 향하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사막을 태양광발전 패널이 덮고 있다. 이글거리는 열기와 만나 만들어내는 신기루가 호수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바람과 태양과 땅이 만들어낸 재생에너지, 자연의 축복을 받은 땅이다.
흔히 미국 땅을 두고 ‘사기 맵’이라 한다. 지정학적 위치부터 자원까지 마치 조작된 것처럼 압도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작은 나라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의 눈에는 경이로움을 넘어서 황당하다. 조국의 척박한 땅을 떠올리면 억울함까지 치민다.
한국은 제아무리 풍력발전소를 만들고 태양광 패널을 깔아도 미국 50개 주 중 2개 주조차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땅도 좁지만 환경 자체가 좋지 않다. 라스베이거스의 연평균 일조 시간은 3825시간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국 평균은 2282시간에 불과하다. 국토의 70%가 산지지만 끝없이 강풍이 부는 바람길은 일부다.
자연의 축복을 받은 미국조차 원자력을 찾는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아귀처럼 전기를 잡아먹는 탓이다. 올 2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전력 소비가 지난해는 물론 올해, 내년에도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2050년까지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의 100GW(기가와트)에서 400GW로 4배 늘릴 계획이다. 원자력을 ‘악’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트럼프 정권의 또 다른 ‘해악’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조 바이든 전임 정부가 내놓은 ‘2050년 원자력 3배’ 정책을 확대한 것이다. 미국의 친원전 기조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은 물론 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스웨덴이 새 원전을 계획 중이다. 원전 가동을 중단했던 독일은 물론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은 스페인도 원자력 복귀를 검토 중이다. 원자력 강국인 프랑스는 애초 원전을 포기한 적이 없다. 탄소 절감과 전력 공급을 함께 잡기 위해서는 원자력밖에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서다.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에서는 에너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산단’과 ‘AI 100조 펀드’를 말하지만 원전 관련 공약은 내놓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로 점차 줄여나간다”는 캠프 측의 언급만 있을 뿐이다. AI 100조 펀드로 그래픽처리장치(GPU) 수백만 장을 확보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전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지방자치단체 비협조에 재생에너지는커녕 당장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건설과 용수 확보가 골치다.
RE100은 ‘한국 정치판 사투리’가 된 지 오래다. 구글에서 ‘RE100’ 영문 뉴스를 검색해보자. 최근 한 달간 기사 수가 30개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절반쯤은 한국 매체의 영자 기사다. 낡은 수사학은 정치 공학에만 쓰인다. 현실 공학에는 눈앞의 전력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100%’ 산단은 신의 축복을 받은 미국 땅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황새도 포기한 걸 뱁새가 따라가서 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