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오버스펙 열풍’이 거센 속사정

2025-01-18

경기침체 장기화에 고학력자, 연봉보다 안정적인 직장 택해

한 중학교사 신규채용 합격자에 13명 중 10명 석·박사 출신

취업난에 진학늘어 대학원생이 대학생수보다 많은 기현상도

청년실업률 급증에 中 정부, 취업난 해소 위해 총력전 펼쳐

중국 동부 장쑤(江蘇)성의 쑤저우(蘇州) 중학교가 지난해 말 발표한 신규 채용 교사 13명 명단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 중 박사 8명과 석사가 5명으로 전원 석·박사학위 소지자다. 출신대학들도 중국 최고 명문대들이다. 이과 최고 명문인 칭화(淸華)대와 문과 최고 명문인 베이징(北京)대 출신 각각 6명과 4명으로 모두 10명이다.

나머지 3명도 손꼽히는 명문대인 난징(南京)대 2명과 중국과학원대학 졸업생이다. 사범대 졸업생은 단 한 명도 없다. 베이징사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제1중학교에 부임한 양샤오둥(楊曉冬·35) 교사는 “박사학위를 마친 후 중학교 교사가 되는 경우가 점점 흔해지고 있다”며 “기초교육 단계에서 더 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물리교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물리학 석사가 고등학교 소사(小使·잡부), 환경기사 자격증 소지자는 환경미화원, 칭화대 박사가 비정규직 보조 경찰, 금융학 석사는 훠궈(火鍋)집 종업원, 철학과 졸업생이 택배 배달원….

“졸업하는 순간 실업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취업 전선에 내몰린 중국 청년들이 구직시장에서 학력을 낮춰 취업하는 ‘오버스펙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 중문사이트가 지난 5일 보도했다.

부동산 경기위축과 내수부진 등 중국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민간기업들의 채용을 줄이는 바람에 고학력자들이 연봉이 적더라도 보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에 따르면 금융학 석사학위를 보유한 쑨잔(孫展·25)은 장쑤성 난징의 한 훠궈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라면서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그런 직장을 찾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쑨은 “종업원으로 일하는 동안 요식사업을 배워 가게를 창업하는 것이 새로운 꿈”이라며 "사업이 성공하면 가족 중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 실업자로 내몰린 대졸자들은 상하이(上海) 남서쪽에 있는 영화제작 거점도시 헝뎬(橫店)으로 대거 몰리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촬영이 많은 만큼 수요가 많은 단역 배우로 일하기 위해서다. 전자정보공학을 전공한 우싱하이(吳星海·26)는 "사람들은 종종 여기에 와서 몇 달만 일한다"며 “자신도 정규직을 찾을 때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를 전공한 리(李)모는 "졸업하는 순간 자연스레 실업자가 되고 만다"며 "이게 바로 중국 청년들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젊은 만큼 열심히 뛰면 나이들어 안정될 것같다”고 덧붙였다.

홍콩과학기술대에서 재무학과를 졸업한 우단(吳丹·29)은 상하이의 한 스포츠 부상 마사지 클리닉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가족들이 그의 선택을 환영하지 않았다며 "석사과정 동창 중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극소수"라고 애써 자위했다.

중국에서는 한 해 1000만명 이상의 대학 졸업생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중국경제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민간기업들이 대졸 신규 채용인원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청년(16~24세) 실업률은 2023년 6월 사상 최고치인 21.3%까지 치솟았다. 당시 장단단(張丹丹)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교수는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에 기고한 글에서 그해 3월 기준으로 청년들의 실질 실업률이 46.5%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놨다.

당황한 중국 정부는 청년실업률 통계발표를 돌연 중단했다. 반년이 지난 그해 12월부터 중고교 및 대학·대학원 재학생을 실업률 통계에서 모조리 뺸 새로운 청년 실업률을 발표했다. 청년실업률은 급락했다. 취업문이 ‘바늘 구멍’처럼 좁아지자 중국 청년들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제일재경(第一財經)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모집한 전국 대학원생은 130만 1700명이다. 6년 전인 2017년(80만 6100명)보다 61%나 폭증했다. 이 가운데 박사과정은 15만 3300명으로 2017년(8만 3900명)보다 82%, 석사과정은 114만 8400명으로 2017년(72만 2200명)보다 59% 급증했다. 그러나 대학원 졸업자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광시(廣西)사범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통상 2년인 석사과정을 3년으로 늘리기도 했다.

더욱이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대의 경우 지난해 대학원생 수가 대학생 수를 앞질렀다. 상하이 푸단(復旦)대는 이보다 한 해 전에 대학원생수가 대학생수(1만 5000명)보다 2배 이상인 3만 7000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중국 청년수가 역사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며 “고용시장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덕분(?)에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기준 석 달째 하락하긴 했지만, 16.1%로 여전히 높다. 장쥔(張珺) 홍콩시립대 공공 및 국제문제학과 부교수는 "중국의 취업 상황이 정말 어렵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기대치를 재조정해야 할 것 같다”며 많은 학생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높은 학위를 선택하지만 현실적인 취업 환경은 그들을 좌절시켰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청년들은 자신의 학력에 비해 적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업 다운그레이드’를 받아들이거나, 재정난에 공무원들이 월급을 제대로 못 받는 지방정부가 태반인 데도 공무원시험 준비생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SCMP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공무원시험 ‘궈카오’(國考)에 젊은이들이 대거 몰려들어 8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3만 9700명 모집에 341만 6000명이 몰린 것이다.

2022년 68 대 1, 지난해 70 대 1의 경쟁률을 훌쩍 뛰어넘은 것은 물론 역대 최고치다. 중국직업교육학회의 경우 단 1명만 채용한다고 공고했는데 무려 1만 67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1만 6700 대 1이라는 상상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철밥통’(大鍋飯)으로 불리는 중국 공무원은 고용 안정성과 정규 근무시간이 잘 지켜지는 까닭에 인기 직업으로 꼽혀왔다. 다만 낮은 임금 탓에 대기업 선호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렇지만 중국 내수경기 침체가 깊어진 지난 몇 년 사이 청년 구직자들의 공무원 쏠림세가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사회안정을 해칠 것을 우려하는 중국 정부는 취업난 해결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에 따르면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와 교육부, 재정부는 최근 ‘대졸자 등 청년 취업·창업에 관한 통지’를 통해 청년 취업과 창업을 촉진하기 위한 11개 정책을 내놨다.

통지에는 일회성 취업 보조금과 일자리 확대 보조금 정책을 통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보조금을 정책을 통합해 대학 졸업자와 미취업 졸업자 등 청년을 채용하는 기업에 일회성 일자리 확대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연수시간이 만료되기 전에 연수생과 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남은 기간 연수생 보조금이 지급된다. 국유기업의 인력과 자본을 늘리는 정책도 연장됐다.

인력자원사회보장부는 청년(16~24세)이나 2년간 실업자로 등록된 대졸자를 고용하는 기업은 1인당 1500위안(약 30만원)의 고용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신규 대졸자만이 고용 보조금 지급 대상이었다.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가 기업들의 채용을 독려하기 위해 고용 보조금의 지급 범위를 넓혔다.

이밖에 청년 창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금융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실무 중심의 직업 교육을 강화해 노동시장 수요에 맞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또한 정부기관과 국유기업에서의 청년채용을 늘리고, 청년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 세금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학 재학생(졸업예정자 포함)이 입대하면 학비를 감면해 주거나, 전역 뒤 복학하면 다른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가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로 복귀했을 때 군 복무기간을 근무 경력으로 인정한 연봉을 받을 수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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