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좀비딸'에 출연한 배우 이정은이 또 하나의 독특한 여성 캐릭터를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K팝과 음주가무를 즐기고 손녀에게 꿈뻑 죽다가도 버르장머리 없는 것은 참지 않는 호된 할머니역이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좀비딸'이 개봉 첫 주 주말, 145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개봉과 동시에 올해 국내 영화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쓰며 1000만 영화 '파묘'를 넘어서는 출발을 보였다. 이정은은 코믹 가족 드라마라는 영화의 매력을 가득 살리는 연기로 이번에도 관객들을 휘어잡는다.
"영화 재미있게 봤어요. 감독님 장면마다 너무 예쁘게 만들어 주셨다, 미장센이 좋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스틸컷에 나왔던 분위기나, 의상 색감 같은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감독님이 그래서 놀이동산 신에서도 의상 하나, 장면 하나하나를 다 색감을 맞춘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거의 패션쇼를 하는 것 같아요. 목에 스카프, 조끼, 힙하게 보일 수 있는 아이템을 많이 골라주셨어요. 그래서 좀 귀엽게 나온 것 같아요."

이정은이 연기한 할머니는 보통의 노인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캐릭터였다. 화려한 색감의 의상이나 귀여운 포인트를 살린 아이템은 물론이고, 무기로 효자손을 사용하는 것도 아이코닉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손녀보다도 더 K팝 유행에 빠삭한 힙한 할머니로서 어떤 생각들을 거쳤을까.
"극의 구조상에서는 제 역할이 손녀를 양육하면서 기강도 잡고 아들에겐 힘도 실어주고, 때론 빠져 있기도 하면서 또 확실하게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어요. 동시에 감독님이 원작 만화에서는 없었던 칠곡 어머니들이 레퍼런스를 좀 주셨어요. 흔히 트로트나 즐기고 또 동네 어른들과 전통적인 모습만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칠곡 어머니들을 만나보니 랩을 즐기시고 흥도 많으시더라고요. 근데 그분들의 삶에, 마음엔 많은 슬픔이 있고 공부 못한 것, 자식을 여윈 것에 대한 여러 가지도 들어 있더라고요. 그분들이 저한테는 좀 좋은 교과서가 되지 않았나 해요. 그렇게 어떤 만화적인 인물에 현실감을 불어넣었죠."
이정은의 나이대보다는 훨씬 높은 연령대의 역할이고, 극중 조정석이 연기한 정환의 어머니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을 고르는데 어려움으로 다가오진 않았을까. 이정은은 "조정석씨에 대한 믿음이 크다"면서 웃었다.
"감독님께 이 작품 얘길 들었을 때 내용이 정말 좋았어요. 나이대 때문에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의상 나왔을 때 한 가지 부탁을 드렸어요. 표정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 할머니 분장을 해서 나이대를 맞춘다고 해도 표정이 가려지면 제가 생각한 느낌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분장보다는 직접적으로 인간이 느끼는 어떤 감정이 잘 표현될 수 있길 바랐죠. 그런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어떤 표정들은 좀 뭐랄까 자연인다운 익살스러운 게 잘 나왔고요. 조정석 씨에 대한 믿음도 워낙 커요. '오나귀' 때 합을 또 맞춰봤고 센스 있는 배우고, 상대 배우의 어떤 창조성이 나올 수 있게끔 배려를 많이 하는 분이라 잘 맞아서 어머니를 하면서도 거리감을 안 느끼게 케미가 잘 맞지 않았나 해요."

무엇보다 '좀비딸'의 출연을 결정하면서는 이 영화의 색깔과 메시지에 주목했다. 이정은은 "전 연령대가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요즘 극장에 오시는 분들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그에도 불구하고 고령이 되시는 부모님도 편하게 보고 또 친척들이나 아이들이 크고 있잖아요. 10대 아이들도, 어린 친구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을 꼭 한번 하고 싶다 그랬는데 이번 작품이 그런 기준이 됐던 것 같아요. 좀 건강한 콘텐츠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실 바이러스나 이런 거에 대한 공포가 되게 심한데, 코로나 때는 서로 막 격리시키고 안보고 거의 이웃을 등한시 하고 그랬었죠.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선택지를 좀 던져서 건강하게 느껴졌어요."
영화 속에선 유쾌한 할머니라는 설정답게 이정은이 직접 동네 잔치에서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평소 춤과 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좋아해서 즐긴다는 이정은은 "이 마을에서 넘버 원이라는 감독님 요구가 있었다"면서 웃었다.
"이 할머니는 그 정도로 문화든, 세대든 모두 아우르는 그런 게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이 사람이 어떤 삶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얻어낸 것 같았죠. 칠곡 할머니가 래퍼가 된 것처럼요. 이 어머니에게도 사실은 알고 보면 되게 어두운 과거들이 있잖아요. 그걸 이겨낸 힘이었을 거다. 저 역시도 배우로서 작품을 멋진 감독님, 멋진 동료들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막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하고도 작업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는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좀 정보를 많이 열어두고, 많이 보려고 해요."

다양한 작품에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있지만 전작에서 여자 경찰 역을 맡아 대형 갤로퍼를 몰고 다니거나, 이번 작품에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삶의 한 켠을 보여준 건 이정은이 유일하다. 이정은은 "정말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저는 확실히 그런 걸 느껴요. 잘 해내야 다른 친구들, 후배들에게도 더 좋은 경험치의 역할들이 올 거니까요. 진짜로 시대가 많이 변했고 우리가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은 현실적인 반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폭이 점점 더 넓어진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다른 측면을 보여줄 수 있는 얘기는 계속 작가들에 의해서 개발이 될 거니까요. 오히려 많이 준비하면서 그런 쪽의 측면을 넓혀가려고 하는 그런 움직임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정은은 현재를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이 되게 우선시되는 시대"라면서 누군가와 한 공간에서 함께 누리는 경험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꺼낸 그는 '좀비딸'에서도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공포의 시퀀스를 같이 좀 느끼시다가도, 그 두려운 마음이 은봉리에 가서 싹 풀리는 경험을 다 같이 하신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은 좋은 것을 누가 보고, 그걸 알려주는 정보의 공유는 되게 크지만 어떤 한 공간에서 어떤 하나를 미친 듯이 같이 좋아하고 같이 누리는 어떤 문화는 좀 약해지지 않았나 해요. 제가 어릴 때 제일 인상에 깊이 박혔던 영화가 벤지예요.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 그때 부모님의 손을 꽉 잡고 그 벤지가 꼭 개를 구출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을 이렇게 어떤 타원형 같은 그 많은 모여 있는 사람들 속에서 같이 공유했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게 지금까지도 영화를 보러 다니게 만드는 힘이죠. 그런 걸 아이들이 좀 많이 경험했으면 좋아 좋겠어요. 스펙타클하고 너무 멋있는 장면만이 아니고 어떤 감정을 공유하는 그런 암흑 속에서의 감정, 고민 이런 것들이 좀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있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