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으로 믿음을 쌓고, 붓으로 다리를 삼자(以玉爲信 以筆爲橋)’는 마음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지난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선물한 후저우(湖州) 옥붓(玉筆)을 직접 만든 장샤오펑(張小鳳·58·사진) 붓 장인의 말이다. 설 덕담인 “해마다 풍요롭기를 바랍니다”에서 따온 문방사우 작품 ‘연년유여(連年有餘)’에는 풍요로울 여(餘)와 발음이 같은 옥(玉)과 물고기(魚·어)가 가득했다.
중국의 1호 선물은 지난달 28일 저장성 후저우시의 중심가에 자리한 장 씨의 매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는 랴오닝 수산옥(岫山玉)과 양·족제비 털로 만든 옥붓 세 자루와 옥으로 만든 서진·붓받침·인장, 광둥의 단계석(端溪石)으로 만든 벼루 단연(端硯)에 새겨진 물고기를 가리키며 “한·중 두 나라 모두 풍요해지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인터뷰는 이튿날 호필(湖筆)의 생산지인 산롄(善璉)진에서 이어갔다. 장 씨는 “옥의 따스한 질감에 붓의 영성(靈性)을 결합해 ‘글쓰기’에 동양 특유의 장중함과 온도를 더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 선물로 선정된 소식은 뒤늦게 들었다고 했다. 그는 “중앙 정부의 담당 부처가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했을 것”이라며 “큰 영광이자 행운”이라고 했다.

붓 만들기에 40여년을 바친 장 씨는 “붓 한 자루에 한평생이 담겨있다”고 늘 말씀하시던 할머니에게 어려서부터 사사했다. 13살이 되던 해에는 또 다른 명장에게 제자로 들어가 10리 밖 스승의 작업장까지 3년간 설을 제외하고는 휴일 없이 기술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장 씨는 후저우 붓의 특징을 첨(尖), 제(齊), 원(圓), 건(健) 네 글자로 요약했다. 그는 “붓끝이 바늘처럼 뾰족해야 정교하게 쓸 수 있고, 붓털은 가지런해야 먹물을 고르게 뱉어내며, 붓머리가 둥글어야 잘 돌리며 쓸 수 있고, 붓털은 탄성이 있어야 눌렀다 떼어도 곧바로 원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필의 사덕(四德)은 인생에도 적용된다”며 “기예는 날카롭게 다듬고, 현인을 만나면 본받으려 노력하며, 일 처리는 원만히 하고, 몸가짐은 강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 씨는 붓 만들기의 철학을 전통과 혁신의 결합에 뒀다. 다섯 색깔 구름이 흩어진다는 오색운개(五色雲開) 붓을 소개하며 “동물원에서 공작새가 깃털을 펼친 순간에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며 “사육사에게 부탁해 떨어진 깃털을 받아와 달걀흰자와 볏짚, 잿물을 섞어 먹물과 잘 섞이도록 기름기를 빼고 깃털의 부드러움과 탄력은 살려낸 새로운 붓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장 씨는 붓머리에 복을 상징하는 조롱박을 결합하는 등의 각종 방식으로 특허 20건, 실용특허 12건을 보유했다.

그는 “최근 복고 스타일이 유행하는 데다 인터넷 쇼핑, 라이브 쇼핑이 인기를 끌면서 오랜 손기술이 인터넷 고속열차를 만났다”고 소개했다. 또 “젊은 MZ 세대가 붓글씨에 빠지면서 소의 뿔, 옻칠, 경태람 등의 옛 소재에 현대적 미감을 살린 디자인이 인기”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붓 장인과 교류를 희망했다. “한국의 서예가와 붓 장인들은 동양의 서예 전통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자적 미학까지 더했다”라며 “붓을 다리 삼고, 먹으로 벗을 맺으며(以筆爲橋 以墨會友) 국경을 넘어 문화의 맥락과 장인 정신을 함께 지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양쯔강 하류 타이후(太湖) 남쪽에 자리한 후저우는 “내 속에 당신이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다(我泥中有你 你泥中有我)”는 ‘아농사(我儂詞·너와 나의 시)’로도 유명하다. 원(元)나라의 화가 겸 서예가 조맹부(趙孟頫·1254~1322)와 역시 화가인 관도승(管道昇·1262~1319) 부부 금슬을 담은 시로 외교 현장에서 종종 인용된다. 조맹부는 붓을 만드는 데에도 뛰어나 호필의 전성시대를 만든 인물이다.

저우칭칭(周靑靑) 중국호필박물관 관장은 “청(淸)대 후저우는 해마다 붓 1500여 자루를 진상했다”며 “지금도 베이징 자금성은 당시 붓 4만 자루를 소장하고 있고, 후저우 붓 2만 자루가 개봉되지 않은 채 보관 중”이라고 소개했다.
후저우와 항저우 사이의 샨롄진은 중국에서 ‘붓의 수도’로 불린다. 붓의 털을 자루에 끼워 넣는 방식을 처음으로 만든 진(秦)의 장군 몽염(蒙恬)의 사당과 수(隋)나라 지영(智永) 화상이 머문 영흔사(永欣寺)가 있다. 지영화상은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왕희지(王羲之)의 7대손이자 역시 명필로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