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송 후지TV의 여성 아나운서 성상납 의혹 스캔들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주간지 슈칸분슌은 2023년 6월 전 SMAP 리더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広·52) 자택에서 후지TV 직원 A씨의 주선으로 당시 후지TV 아나운서와의 식사자리가 있었고, 그곳에서 이 여성이 나카이와 원치 않는 관계를 맺었다고 보도했다. 곧이어 비슷한 형태로 나카이와 A씨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다른 증언도 나왔다.
후지TV는 지난달 17일과 27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자사 직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슈칸분슌은 지난달 28일 “추가 취재 결과, 여성은 나카이에게 초대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정정보도했다. 그러면서 “피해 여성은 (사건이 일어난) 식사 자리가 ‘A씨가 주도한 자리의 연장선이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여성 측은 여전히 피해사실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카이는 지난달 23일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후지TV의 가노 슈지(嘉納修治) 회장과 미나토 고이치(港浩一)사장도 지난달 27일 사퇴했다.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 약 80개 광고주가 후지TV 광고를 중단했고, 이런 기업은 더 늘어날 조짐이다. 현재 후지TV의 광고는 자사 프로그램 홍보와 공익재단 AC 재팬 광고로 대체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정부 공익광고 4건의 방영을 취소했다.
후지TV 내에서 경영진의 은폐의혹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간지 보도 후 한 달이나 지난 시점에 기자회견을 열었고, 첫 기자회견은 참석 매체도 일부 신문 및 방송사로 제한했다.
후지TV는 또 사건을 인지한 후에도 1년 넘게 나카이를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는데, 미나토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조용히 업무에 복귀하고 싶다’는 여성의 뜻을 존중한 조치였다”며 2차가해도 서슴지 않았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도쿠라 마사카즈(十倉雅和) 회장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기업들은 인권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며 “광고주들이 후지TV 광고를 중단한 것도 이러한 인식 변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지TV는 1990년대, 20대 ‘여성 아나(女子アナ)’를 연예인처럼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시키는 아나테이너 시대를 열었다.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미나토 사장은 자신의 생일 파티에 여성 아나운서들이 참석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여성을 접대 요원으로 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세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가장 큰 문제는 후지TV의 조직적인 은폐·축소 시도와 일본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여성 인권 경시풍조다. 현재 일본에선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시민단체가 없다. 여성의 지인들이 개인적으로 나서서 주간지에 피해내용을 제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지난달 27일 두번째 기자회견 직후 X(옛 트위터)에서는 “후지TV 불쌍하다”는 글이 실시간 트렌드 1위를 차지했다.
오카와 지히로(大川千寿) 가나가와대 교수는 아사히 신문에 “나카이를 프로그램에서 즉각 하차시키지 않은 것은 마치 그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비쳐져 피해여성을 압박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선 2017년 전세계를 강타한 ‘미투’운동도 크게 확산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사회의 ‘여성 상품화’라는 악습이 개선되기는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