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기의 문화기행] 비암산 일송정을 가다

2025-02-28

1980년대 중고, 대학 시절을 보낸 386세대인 난 “일송정 푸른 솔은~” “한 줄기 해란강은~” ‘선구자’ 노래를 많이 불렀다. 만주로 이주한 조선 백성의 한(恨)과 눈물이 배어 있다 해서 ‘눈물의 강’, ‘어머니의 강’, ‘피눈물의 강’으로도 불린다는 해란강은 두만강 지류로 분단 80년을 넘긴 지금도 그렇게 흐르고 있다. 세파에 시달린 순박한 시골 아낙처럼 정상의 소나무는 1930년대 일본군이 사격 연습용 과녁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일제의 눈에는 소나무가 독립군의 심장으로 보였을 것이다. 일제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고춧가루를 넣고 쇠못을 박아 고사시켰고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모르고 지냈다.

2003년 당시 한국 통일부가 백두산에서 가져다 심었다는 소나무 모습이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처럼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1절.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2절.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 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3절. 용주사 저녁 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1절만 윤해영 작사고 2·3절은 후에 작곡자 조두남이 작사했다고 한다. 1절이 자주 불려서 2·3절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 제목은 ‘용정의 노래’였다.

1980년대까지 널리 불리던 노래였다. 가사에 나오는 지명 때문에 만주(특히 북간도)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리하여 1980년대까지 매우 자주 불리던 노래였다. 학생 운동권에서조차 이 노래를 민중가요 못지않게 부를 정도였으니. 하지만 지금은 작사가, 작곡가 모두 친일 논란에 휘말리는 바람에 외면받고 있다.

그래도… 일송정은 일송정. 비암산 일송정에 오르니 해란강도 만주벌판도 용정도 한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진 만주벌판 칼바람이 매섭다. 그 시절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삶처럼 해란강도 일송정 푸른 솔도 그렇게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권오기 여행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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