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지권 확대∙AI CCTV…"산재 사고, 처벌보다 지원을" [중대재해 전수조사]

2025-08-17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021년부터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하고 있다. 근로자가 작업 중 위험요인을 신고하면, 전담 조직이 2시간 내 개선 조치를 하고 신고자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작업중지권 사용으로 협력 업체에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보전해줬다. 이후 재해율(전체 근로자 대비 재해자 비율)이 2021년 0.18%에서 올해 6월 0.12%로 33% 감소했다. 또 2022년부터는 ‘안전인정제’를 도입해 협력사에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우수 등급을 받은 곳에 입찰 참여 기회를 우선 부여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상해 사고가 2023년 대비 46% 감소했다는 게 삼성물산 측의 설명이다.

삼성물산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로 최근 열린 건설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우수사례로 이를 발표했다. 호반건설도 이 자리에서 외국인 근로자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인공지능(AI) 번역 시스템 도입 방안 등을 소개했다. 또 매달 고위험 현장을 선정해 집중 관리한 결과 지난해 건설 현장 사망 사고 0건을 기록했다.

17일 정부와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산재 발생 기업에 고액 과징금이나 영업 정지ㆍ등록 말소 등 강도 높은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성과를 높이기 위해선 정부가 안전 관련 예산이나 인센티브 확대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재난정보학회 논문집에 실린 ‘건설사고 감소를 위한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자 수(2019년7월~2022년6월)는 사업장 규모가 19인 이하인 소규모 사업장이 384명으로 가장 많았다. 20인 이상인 사업장의 사망자 수(293명)의 1.3배에 달했다. 19인 이하 사업장의 사상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13:1로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38:1)에 비해 높았다. 공사비 기준으로 보더라도 총액이 10억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의 사상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8:1로, 10억 이상인 경우(25:1)보다 높았다.

고위험ㆍ영세 사업장을 위해선 노후장비 교체나 안전장비 지원, 산재예방시설에 대한 융자나 컨설팅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고용부의 산재예방 관련 예산은 1조3837억원으로 전체 예산(35조3452억원)의 3.9%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예산만 늘리는 게 능사도 아니다. 최근 5년간 산재예방 관련 예산이 꾸준히 늘었지만 사망자가 크게 줄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기업의 위험요인 개선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노동자가 위험을 느끼면 즉시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지금은 ‘급박한 위험’이라는 조건 해석이 엇갈려, 노동자가 임의로 작업을 중단하면 징계ㆍ임금삭감 등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크다. 김태구 인제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안전 투자를 돈으로 여기는 풍토에서, 안전에 투자할수록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안전할수록 기업활동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바꿔 가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 관련 법령 간 정의 및 적용 기준을 재정비해서 해석상의 혼란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기업은 서류 작업 등 면피성 대응에 치중하고, 중소기업은 안전관리를 포기해 버리는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대재해’의 정의만 보더라도 중처법ㆍ산업안전보건법은 모두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로 보지만, 건설기술진흥법에선 ‘중대건설현장사고’를 사망자가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제재 만능주의는 위험하다. 기업들이 예측할 수 있고 이행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하는 게 우선”이라며 “산업 안전은 제재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산재예방 시스템을 얼마나 선진적으로 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고 짚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 현장의 안전 확보 비용을 이 사회가 같이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기업이 과거보다 안전관리 비용을 늘리고 있지만 적절한 공사 비용, 적정한 공사기간이 지켜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업현장에서는 AIㆍ가상현실을 접목한 스마트팩토리 시설을 통해 산재를 줄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부터 독일 지멘스와 손잡고 스마트조선소 구축에 나선 상태다. 가상의 조선소를 구축해 설계→자재운반→시제품 생산→양산모델 생산 등 모든 과정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관리하는 형태다. 한화오션도 최근 다쏘시스템의 스마트솔루션을 일부 공정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팩토리가 도입되면 설계부터 노동자의 동선이 고려되고, 노동자의 헬멧ㆍ조끼에 센서가 부착돼 위치추적, 위험구역접근 알림 등이 이뤄지기 때문에 산재에 노출될 확률이 줄어든다.

철강업의 경우, 고온 용광로에 센서를 설치해 온도ㆍ가스ㆍ압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인공지능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재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스마트화를 진행 중이다. 로봇ㆍ드론 투입도 산재 예방책 중 하나다. HD현대중공업은 용접 로봇을 투입해 노동자의 고소ㆍ밀폐작업을 줄이고 있고,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냉연강판 공정에 밴드 커팅 로봇을 투입해 날카로운 절단면에 노동자가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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