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웰다잉, 자기결정권과 유류분 제도 [웰다잉기획⑤]

2024-10-06

<편집자 註> 고령화 등으로 지난해 사망자 수가 역대 최고치를 찍은 한국은 죽음이 흔한 사회다. 고령사회의 화두인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 고조는 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을 기피하는 정서 또한 강하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에 비해 존엄한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준비가 소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나 삶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꿈꾸지만 냉정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지금, NGO저널은 대한웰다잉협회와 공동기획으로 진정한 웰다잉의 의미와 현실의 문제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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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헌법재판소는 형제자매에게 주는 유류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4호에 대해서는 위헌, 특정인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는 1118조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류분 제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상속인이 유산을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하여 남은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취지에서 1977년 도입되었다. 이 제도로 인해 피상속인의 유언이 있더라도 자녀와 배우자는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보장받게 되어있다.

헌재는 이 중 형제자매에게 돌아가는 유류분을 위헌으로 판정했다. 형제자매의 경우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당성을 인정했다.

즉 “가족의 역할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상속인들은 유류분을 통해 긴밀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봤다. 판결 중 눈여겨볼 대목은 “가족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유류분을 받을 권리를 빼앗는 보완 제도를 두지 않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라고 판단한 부분이다. 취지와 달리 악용되는 유류분 제도의 허점에 대해 지적한 것이다.

유류분 제도는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것과 같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즉 불효자를 양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 생전에 모시기는커녕, 찾아뵙거나 연락도 하지 않으면서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나타나 본인의 법정 상속재산만 받으려는 불효자에 대해 유류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이 2012년 590건에서 2022년 1872건으로 10년간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많은 소송 중 하나이다.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피상속인의 자기결정권이 낮다는 점에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유언장을 통해 자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거나 해도 자녀나 배우자 등 상속인이 유류분을 주장하면 법정에서 일정부분의 금액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사회의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 유류분 제도가 자기결정권이 낮다는 점에서는 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는 고령화사회를 넘어 65살 고령인구 비율이 20%이상인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2023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등록인구가 5132만5329명이고 65세의 고령화 인구는 973만411명으로 19%에 달했다. 고령화 인구의 증가 속도로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고령화사회의 진입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웰다잉에 대한 정치사회적 관심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안락사와 구분되는 존엄사에 대한 내용을 법률로 제정한 일명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이 오랜 논쟁 끝에 2016년 2월 제정되어 2017년 8월부터 시행되면서 웰다잉 문제가 사회적으로 본격화되었다. 시민단체 경실련은 당시 이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주도적으로 운동을 진행한 바 있다.

웰다잉 관련 법률제정의 움직임은 21대 국회에서도 이뤄졌다. 인재근 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웰다잉 기본법」이 대표적이다. 법률안에서는 제안이유를 “인간은 일생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유산을 남긴다.” 그리고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이러한 유산의 정리 또는 처분과 관련해 당사자의 의지와 결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웰다잉의 정의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호스피스·완화의료,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장기 등 기증, 장례 및 장묘, 유산 상속 및 기부, 유언장 및 생애보 작성을 포함하여 죽음에 관한 사항을 당사자가 미리 결정하여 사전에 준비하고, 당사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그에 따라 이행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내렸다.

이 법안은 웰다잉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정책의 기본방향, 기반 조성, 전문인력 양성 등이 포함된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 및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웰다잉 지원에 관한 자료를 효율적으로 처리키 위해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 및 운영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이 법안은 21대 국회가 막을 내림에 따라 자동 폐기되었다.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웰다잉은 법률안의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제도에서 죽음을 앞둔 당사자의 결정권은 미약하다. 유류분 제도도 이 중 하나이다. 음과 양의 역할로 인해 당장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당사자인 피상속인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는 있다.

특히 헌재도 지적했듯이 가족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구성원에게는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보완책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웰다잉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유류분 제도뿐만 아니라 장례와 장묘 등 관련 정책 전반에 걸친 논의의 장을 마련하여 정책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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