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장성일씨의 죽음 한 달, 노모는 아직 밥상에 아들 수저를 올린다

2024-10-06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성일씨(44)의 일흔다섯살 노모는 아직 아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밥을 차린다고 했다. 아들이 몸을 누이던 방에 영정을 놓고 그가 좋아했던 닭볶음탕, 돼지고기볶음 옆에 수저를 놓는다. 지난 5일 경기 의정부시청 인근에서 만난 장씨의 누나 선애씨(50)는 “사십구재까지는 영혼이 이승에 있다고 하잖아요. 엄마는 아직도 동생이 있다고 느끼시나 봐요”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장씨는 의정부시청이 ‘장애인 활동지원금을 부정수급했다’며 2억여원의 추징을 예고하자 지난달 4일 세상을 등졌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유가족은 의정부시 내 한 병원에 장씨의 시신을 안치한 채 발인을 미루고 있다. 누나 장씨는 “동생이 왜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야 한다”며 “진상규명과 의정부시의 책임있는 사과 없이는 동생을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누나 장씨는 지난 한 달을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며 보냈다. 10개가 넘는 언론인터뷰를 하고 집회와 시위, 항의 방문을 이어간 것도 동생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였다. 의정부시 측은 유족과 만나 “조사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시는 입장을 바꿨다고 한다. 누나 장씨는 “의정부시청은 조사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장씨가 떠난 뒤 한 달은 장애인 복지의 민낯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일상활동지원을, 고용노동부는 근로 지원을, 중소벤처기업부는 업무 지원을 맡고 있는데 장애인이 다른 부처의 사업으로 중복 지원을 받으면 부정수급 대상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씨도 이처럼 복잡한 지원 체계를 헤매다 범법자로 몰린 후 “남들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니 너무 허무하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누나 장씨는 “현실과 행정이 너무 안 맞아 동생이 얼마나 답답했을까”라며 “장애인도 죽을 듯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도록 국가가 기반을 마련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이상일 뿐이었다”고 했다.

안마바우처 사업이 대폭 축소된 사실도 동생의 죽음 뒤에 알게 됐다. 안마바우처는 근골격계·신경계·순환계 질환이 있는 60세 이상 노인 대상으로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안마 서비스를 하는 데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의정부시는 2021년 600명이던 안마바우처 사업 대상자를 올해 260명만 모집했다. 의정부시 내 시각장애인 안마원은 15곳으로, 안마원 한 곳당 40명이었던 손님이 약 17명으로 준 것과 같다. 누나 장씨는 “세수가 부족하다는 데 제일 힘 없는 사람이 표적이 된다”고 말했다.

누나는 동생을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살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장씨의 안마소 영업은 오전 10시부터였지만 그는 오전 7시부터 일했다. 안마받는 어르신이 ‘시원하다’고 말하면 그저 기뻐했다고 한다. 노모는 “성일이가 속옷까지 땀으로 절었다. 힘들어서 어쩌냐”고 하소연했지만, 장씨는 늘 “괜찮다”고 웃으며 집을 나섰다. 아직 아침잠을 깨지 못한 아들들에게 “학교 잘 다녀오고, 말 잘 듣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출근길에 힘을 얻는 가장이었다. 주말이면 안마소 일을 돕는 아들들에게 일당 명목의 용돈 5만원을 쥐어주는 게 장씨 인생의 낙이었다.

누나 장씨는 “2019년 동생이 처음 자신의 안마원을 열고 난 뒤 짓던 함박웃음을 잊지 못한다”며 “동생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알려서 앞으로 다른 장애인 가족은 이런 아픔이 없기를, 제2의 장성일이 안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