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서는 열악한 환경
작은 문제부터 바꿔가는 조직
조합원 12만 넘는 ‘제1교원노조’
20·30대 젊은 교사가 절반 차지
“민원 대응, 교사 개인 처리 많아
‘제주 사건’ 같은 비극 더 없어야”
최근 몇 년 사이 노동운동계에서는 이른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가 이슈였다. 이들이 이끄는 노동조직들은 정치 논리보다 노동자 권익이라는 본질에 집중해 새 노동운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교직 사회에서 떠오른 것은 2017년 창립한 교사노동조합연맹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진보)과 교원단체총연합회(보수)로 나뉜 판에서 선뜻 마음을 열지 못했던 젊은 교사들은 ‘교사의 권리’에 집중하는 교사노조로 모였고, 교사노조는 조합원 12만명을 넘기며 제1교원노조 자리에 올랐다.
교사노조는 올해 초 치러진 위원장 투표에서 역대 최연소인 1989년생 이보미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또 한 번 젊어졌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교사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쏟아지는 이슈에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라며 “일이 너무 많아 일부러 젊은 사람을 뽑은 것 같다”며 웃었다.
평범한 초등 교사였던 이 위원장이 교사노조에 들어온 것은 ‘민트색’ 데스크 매트가 시작이었다.
2020년, 다른 교사의 책상에서 매트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매트 한쪽에 ‘대구교사노조’라고 적혀있었다. 호기심으로 가입한 그가 느낀 것은 ‘신선함’이었다. 이 위원장은 “교사들이 점조직 형태로 현장에 밀접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신선했다”며 “기존에 못 봤던 교원단체란 생각이 들었고, 우리 현장을 바꿀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그의 믿음처럼 교사노조는 젊은 교사들의 호응을 받고 몇 년 새 급성장했다. 현재 조합원 중 절반은 20·30대다. 이 위원장이 말하는 교사노조는 ‘선생님들의 작은 문제부터 바꿔나가는’ 조직이다. 그는 “교원 정치기본권, 처우 등 큰 토양을 바꾸는 일도 하지만 ‘왜 물을 우리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나’ 등 당장 교사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해결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학교는 교사들이 ‘그냥 참자’며 넘겼던 문제들이 쌓인 곳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물조차 사비를 모아 생수를 사 마셔야 할 정도로 ‘직장인’ 교사에겐 열악한 환경이다. 교사노조는 이런 문화를 바꾸는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 이 위원장은 “교사 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뿌듯했지만 가슴 한구석에 ‘교사들이 언제까지 보람을 느끼며 이 생활을 할 수 있을까’란 회의가 있었다”며 “이 직업을 좀 더 좋게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교직 사회의 이슈 중 하나는 현장체험학습이다.
강원 지역에서 현장체험학습 도중 학생이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건과 관련, 교사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올해 많은 학교에선 현장체험학습이 중단됐다. 이 위원장은 “현재 교사에게 많은 책임이 몰려 있는 구조”라며 “현장체험학습은 변수가 많아 돌발행동에 모두 대처하기 어려운데, 판결 후 교사들에게 ‘잘못하면 전과자가 되고 직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가 퍼졌다”고 말했다.
교사노조는 해당 교사의 2심 법률대리 등을 지원하는 한편, 구체적인 학교안전법 매뉴얼이 정리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교사 폭행 사건 등 교사들의 힘을 빼는 사건들이 연일 발생하고 있지만, 이 위원장은 이럴 때일수록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교직 문화는 선생님들이 주체 의식을 가지고 해결할 때 더 빨리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며칠 뒤, 제주에선 학생 가족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년 전 ‘서이초 사건’을 겪었던 교사들은 또 한 번 상을 치르는 중이다. 이 위원장은 추가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서이초 사건 후 민원 대응 시스템이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교사 개인이 처리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교사노조는 전교조, 교총과 다음달 공동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다신 이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며 “교사들이 실제 어떻게 민원에 대응하고 있는지 등을 교육부가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현장 의견을 반영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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