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의 더클래식 in 유럽

약간의 아쉬움도 없는 완벽한 날씨. 그날 암스테르담이 그랬다. 반 고흐 미술관 앞의 잔디 광장에 드러누워 햇볕을 쬐는 사람들 사이를 조심히 걸어가면 오늘의 공연장을 만난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자, 여기부터는 북새통이다.
5월 11일 일요일 저녁, 암스테르담의 이 공연장은 야단법석이었다. 유난히 좁은 로비에 가득한 사람 사이를 헤엄치듯 지나, 프레스 데스크를 찾아가 본다. e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던 언론 담당자, 제이콥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내가 한국에서 온 기자, 킴이에요!” 반쯤 혼이 빠진 표정으로 제이콥은 대답한다. “반가워요! 그런데 누구라고요? 미안해요, 너무 수많은 다국적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곧 기억날 것 같아요.”
큰 키에 다정한 얼굴을 한 제이콥이 미안해하며 서랍을 열어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준다. 에코백, 배지, 그리고 하드커버로 된, 전 세계 공연장의 프로그램북 경연 대회가 있다면 쉽게 그랑프리를 차지할 것 같은 고급스러운 프로그램북. 또, 하나는 짙고 하나는 옅은 두 개의 초콜릿 세트.
이 모든 물품에는 한 명의 옆얼굴이 그려져 있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 지금 암스테르담은 이 작곡가로 야단스럽다. 5월 8~18일, 11일간의 말러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이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와 베를린필을 포함한 유럽, 미국, 아시아의 5개 오케스트라, 각 100명 정도씩 단원이 도착했다. 이들은 총 11개의 말러 작품을 나눠 연주한다.
이걸 다 연주하려면 합창단은 혼성, 여성, 어린이가 각각 필요하고 특수 제작한 나무망치부터 소 방울, 썰매 방울 같은 괴상한 악기들도 있어야 한다. 지휘자는 또 어떤가. 전 세계에서 가장 떠받들어 모셔야 할 지휘자의 목록을 1위부터 적은 다음 상위 6위까지 잘라서 데리고 온 것 같은 축제다. 여기에 말러의 가곡 공연도 다섯 번 추가로 있고, 말러와 관련한 강연, 야외 공연, 공연 생중계, 영화 상영, 체험 시설, 그리고 말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도보 투어까지 운영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오로지 한 작곡가, 말러만 바라보고 있다.
잠깐, 그런데 왜? 왜 암스테르담이지? 말러는 지금은 체코이지만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태어난 작곡가다. 유럽의 서쪽 끝에 자리한 네덜란드, 깐깐한 상인들의 도시 암스테르담이 왜 보헤미아의 작곡가를 위해 열렬히 축제를 열고 있을까?
여기에는 한 남자의 지극한 순정이 있다. 그는 1902년 6월 독일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