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호밍 시대, 콘텐츠 대가 기준 흔들…“독점 기반 산정은 낡은 잣대”

2025-04-24

멀티호밍 시대에 맞춰 콘텐츠 유통 구조와 대가 산정 방식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단일 플랫폼 유통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 콘텐츠 대가 체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케이블TV의 공공성과 수익성이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는 24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서 열린 미디어 스터디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IPTV, 케이블TV 등 다양한 플랫폼을 병행 이용하는 멀티호밍은 이미 콘텐츠 소비의 일상적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실시간 뉴스, 재난방송, 생활 밀착형 지역 정보 등 케이블TV만이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는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케이블TV는 경쟁 매체가 아니라 시청자의 욕구를 채우는 '보완적 소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 대표는 “멀티호밍 이용자는 오히려 케이블TV 시청 빈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이 같은 특성을 시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MA)을 통해 플랫폼 간 전환 장벽을 낮추고, 독일은 배타적 계약을 사전 규제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도 알라카르테 요금제 권고, 콘텐츠 독점 계약 제한 등 시청자 권익 보호에 나서고 있다.

국내 케이블TV 업계는 콘텐츠 확보 비용, 재전송료 부담, 광고 수익 감소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콘텐츠 사용료 체계는 여전히 독점 유통을 전제로 설계돼, 동일 콘텐츠가 여러 플랫폼에 공급되더라도 각각 별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는 과도한 비용 부담을 유발하며 시청자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광고 시장도 중복 소비가 일반화되면서 노출 효율 저하로 광고 단가가 낮아지고, 수익성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콘텐츠 대가와 광고 수익 간 괴리가 커지며 유료방송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은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

이에 해외에서는 '인크리멘털 프라이싱(Incremental Pricing)' 원칙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콘텐츠의 독점 소비분에만 높은 대가를 적용하고, 중복 소비에 대해서는 낮은 단가를 매기는 방식이다. 2023년 디즈니와 차터 커뮤니케이션즈 간 협상에서도 이 원칙이 반영돼, 일부 콘텐츠는 별도 비용 없이 제공됐다.

한 대표는 “국내도 콘텐츠 소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콘텐츠의 가치를 정교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는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기준을 마련하고, 인상률 상한제나 중재 제도 등을 통해 협상 결렬에 따른 송출 중단(블랙아웃)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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