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농구가 출범 이래, 외국 선수는 자주 바뀔 때가 더 많았다. 3~4시즌 이상을 꾸준히 뛴 선수가 많지 않았다. 최근 들어, 다년 간 KBL을 누빈 이는 더욱 없었다. 그러나 KBL에서 지난 2010년부터 6시즌을 소화한 외국 선수가 있다. 바로 안양 KGC인삼공사(현 안양 정관장)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데이비드 사이먼이다.
대학에서
일리노이주 버논힐스 출신인 사이먼은 퍼듀대학교 포트웨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첫 시즌에 30경기에서 평균 10.6점 5.8리바운드 1.3블록슛으로 자신을 알렸다. 그러나 왼쪽 무릎을 다치면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사이먼은 대학 무대에서 손꼽히는 센터였다. 국내 무대에도 선보인 바 있는 에메카 오카포와 최고 센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듬해에는 좀 더 나아진 면모를 보였다. 28경기에서 경기당 31.4분을 뛰면서, 18점(필드골 성공률 : 58.4%, 3점슛 성공률 : 100%, 자유투 성공률 : 64.8%) 9.8리바운드 1.9블록슛 1.6어시스트를 책임졌다. 출전 시간이 대폭 늘었고, 이에 걸맞은 생산성을 자랑했다. 특히, 필드골 성공률이 무려 60%에 육박했다.
사이먼은 2004 NBA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나 프리-드래프트 캠프에서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당하면서, 프로 진입을 뒤로 미뤄야 했다. 학교로 돌아온 사이먼은 2004~2005시즌에 25경기 평균 32.1분 동안 16.6점(필드골 성공률 : 52.3%, 3점슛 성공률 : 7.7%, 자유투 성공률 : 63.3%) 6.9리바운드 2어시스트 1.8블록슛을 기록했다.
사이먼은 대학 졸업 후 불가리아와 러시아, 프랑스에서 뛰었다. 불가리아와 러시아에서 뛸 때는 평균 11점 정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더 나은 기록을 남겼다. 유로챌린지에서는 경기당 17.8점 8.3리바운드로 맹활약했다. 그 후 한국 무대로 눈을 돌렸다.
안양에서 : 2010~2011
사이먼이 한국으로 눈을 돌릴 때, KBL은 드래프트로 외국 선수를 선발했다. 2009~2010시즌 종료 후, 부산 KT(현 수원 KT)와 창원 LG가 각각 제스퍼 존슨과 크리스 알렉산더와 재계약을 맺기로 했고,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가 3순위(실질적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이어, KGC인삼공사가 4순위로 선발할 기회를 얻었다. KGC인삼공사는 사이먼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사이먼은 골밑 존재감을 지닌 빅맨이다. 그리고 득점과 리바운드 모두 준수하다. 그래서 사이먼은 드래프트 최대어로 손꼽혔다. 또, 준수한 슛 터치를 갖추고 있어, 중거리슛으도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여러 장점을 보유한 사이먼은 첫 시즌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기마다 20점 이상을 어렵지 않게 책임지면서, 팀의 구심점으로 거듭났다.
더구나 KGC인삼공사는 당시 어린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다지고 있었다. 사이먼의 활약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시즌 중후반에 부상을 입었다. 무릎을 다친 사이먼은 남은 일정을 뛸 수 없었다. 평균 20.2점 9리바운드 1.6블록슛 1.5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한국에서의 첫 시즌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KBL이 또 한 번 외국 선수 선발 제도를 변경했다. 자유계약으로 선수 계약 방식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1인 보유-1인 출전’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런 이유로, 사이먼은 KBL에 남지 못했다. 한국을 떠난 사이먼은 세르비아에서 뛰었다. 그리고 아드리아틱리그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원주에서 : 2014~2015
그 사이, KBL은 외국 선수 선발 방식을 드래프트로 바꿨고, 사이먼은 한국으로 또 한 번 문을 두드렸다. 사이먼을 택한 팀은 공교롭게도 동부였다. 부상을 당했을 때의 상대 팀이었던 팀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것.
당시 동부는 김주성(현 원주 DB 감독)과 윤호영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먼의 가세는 큰 힘이 됐다. 사이먼이 가세한 후, 동부는 다시금 최정상급 높이를 구축했다. 사이먼이 무게 중심을 잘 잡았고, 김주성과 윤호영이 넓은 수비 범위를 보여줬다. 서로가 상생할 수 있었다.
사이먼은 동부에서 54경기 모두 출전했다. 누구보다 꾸준한 기량을 보여줬다. 경기당 15.6점 6.5리바운드로 KGC인삼공사 시절만큼의 기록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동부는 리그 2위를 차지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는 쉽지 않았다. 동부는 정규리그 6위였던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를 만났으나, 의외로 고전했다. 게다가 사이먼이 플레이오프 도중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오른손잡이였기에,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앤서니 리처드슨의 3점슛이 5차전에서 터지면서, 동부는 3년 만에 챔피언 결정전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4강 플레이오프에서 너무 많은 힘을 뺐다. 결국 챔피언 결정전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사이먼의 우승 기회는 아쉽게 사라졌다.
서울에서 : 2015~2016
KBL은 2015~2016시즌 개막 전 외국 선수 선발 제도를 부분 변경했다. 신장 제한을 토대로, 장신 선수와 단신 선수를 구분하기로 한 것. 이에 따라, 10개 구단 모두 기존 외국 선수와 재계약할 수 없었다.
사이먼도 드래프트를 다시 거쳐야 했다. 사이먼은 이때 SK의 부름을 받았다. 사이먼은 드워릭 스펜서와 SK 유니폼을 입었다.
사이먼이 입단하기 전까지, SK는 ‘애런 헤인즈-코트니 심스’ 조합과 3시즌을 함께 했다. 상호 보완이 가능한 조합이었고, 이들과 국내 선수의 조합이 잘 맞춰졌기 때문. 그러나 큰 경기에서 고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SK는 높이 좋은 사이먼을 선택했다.
사이먼은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SK는 국내 선수 조합을 변경했다. 박상오(현 천안쌍용고 코치)를 트레이드했고, 귀화 선수였던 박승리를 활용할 수 없었다. 기존 장신 포워드(최부경-김민수-박상오-박승리) 중 둘을 보냈다. 이승준과 이동준, 오용준과 이정석(용산중 코치) 등으로 이적 자원을 대체했다.
그러나 김선형이 징계로 인해 2015~2016시즌 초반에 나설 수 없었고, 야심차게 영입했던 이승준은 팀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다. 이동준과 이정석도 이전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김선형이 시즌 중 돌아오기는 했으나, 돌파 비중이 높았던 김선형은 사이먼과 좋은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사이먼이 시즌 평균 20점 이상을 꾸준히 기록했다. 평균 블록슛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다른 선수의 지원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특히, 단신 외국 선수인 스펜서가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SK가 드웨인 미첼로 스펜서를 대체했으나, SK는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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