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헌재 6인이든 9인이든 12·3 계엄은 대통령 파면 감"

2024-12-26

'헌법 권위자' 이석연 동서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12·3 계엄

헌법재판소는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심의하기 위해 27일을 첫 변론준비기일로 잡았다.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 서류를 수령하지 않고, 소송 위임장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최장 180일 시한의 '탄핵 열차'가 공식적으로 출발하는 셈이다. 헌법상 각종 권한 해석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헌재 1호 헌법연구관' 출신으로 대표적 헌법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석연(70) 동서대 석좌교수를 만나 뜨거운 헌법 쟁점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는 참여연대 운영위원과 경실련 사무총장 등을 역임한 '1세대 시민운동가'다. 전북대 법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시(23회)와 사시(27회)에 합격한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역임했고,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때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관리위원장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정치적 지향에 대해 그는 "헌법적 자유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국가 정체성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기에 보수라 할 수 있지만, 항상 사회적 약자 편에 서 왔기에 진보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형식적 국무회의, 회의록도 없어

헌법 요건 충족하지 못한 계엄

국회 난입은 폭동이자 내란 해당

사안 단순, 2~3개월엔 결론 가능

내각제 좋지만, 직선제 열망 고려

4년 중임 정·부통령제로 개헌을

헌법에 '국가 정체성' 신설 필요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 보완해야

"이재명, 계엄 닷새 전 계엄 선포 우려"

-12·3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과대망상증 환자의 '자멸극'이 시작됐다고 직감했다. 계엄 선포 닷새 전이던 11월 2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오찬 회동 중에 나눴던 말이 번뜩 떠올랐다. 당시 이 대표는 비공개 대화 중에 '계엄 선포가 우려된다. 적어도 경비계엄 정도는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널리 알려 주의를 환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감히 계엄을 선포하겠는가'라며 화제를 돌렸을 정도였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헌법상 통치행위라 주장하던데.

"가당치 않은 소리다. 통치행위라는 용어는 전제 군주 시대의 유물이라 현대 헌법학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설령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헌법 틀 안에서 해야지 헌법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통치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계엄은 헌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한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해 위헌적이다. 이번 쿠데타를 단죄하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되든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정적 제거나 미운 놈 손 봐줄 수단으로 언제라도 계엄을 발동할 수 있게 된다. 공포정치의 도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헌법의 관점에서 그날 밤 국무회의를 따져본다면.

"헌법 82조에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려면 반드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회의록을 작성하고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서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날 밤 국무회의가 형식적으로 열렸지만, 한덕수 총리는 회의록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는 비상계엄 선포 행위의 절차적 요건이 모자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다. 헌재가 이점에 착안해 그날 밤 국무회의 회의록 제출을 요구한 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다만 그날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사전 공모에 가담했거나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았다면 공범으로 처벌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행위는 내란죄가 성립될까.

"윤 대통령이 '방송을 통해 예고하고 하는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강변하던데, 참으로 유치한 변명이다. 12·3 쿠데타는 사전에 나름 치밀하게 계획된 것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내란죄 실행의 착수에 해당한다. 실패한 쿠데타지만 내란죄의 완성, 즉 범죄의 기수(旣遂)에 해당한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더라도 국회 권한은 손댈 수 없다. 계엄 선포 이후 국회와 중앙선관위에 난입해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것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 기관의 권능을 소멸시키는 행위로서 형법 제91조 국헌 문란에 해당한다."

박근혜 탄핵은 8인 체제로 선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26일 국회가 추천한 헌재 재판관 3인의 임명을 보류하며, 여야가 합의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야당은 탄핵 소추안을 발의해 27일 처리를 예고했다.

-9인 재판관 체제인 헌재가 지금 6인이라 논란이다.

"6인 체제로 탄핵안을 심리하고 선고하더라도 헌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박근혜 탄핵안도 재판관 8인 체제에서 선고했다. 다만 헌법이 정한 재판관 9인 체제의 정신을 살리고 국민 공감을 고려한다는 취지에서는 속히 재판관 3인을 충원해야 할 것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국회 몫 재판관 3인의 임명 안이 오면 즉시 임명해야 한다. 국회 추천 3인의 임명권은 대통령의 형식적·의례적·소극적 권한이므로 권한대행이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의 취지다. 만약 한 권한대행이 임명을 지연하거나 거부하면 탄핵 사유가 된다."

-헌법 전문가로서 헌재의 결론을 어떻게 전망하나.

"대통령 탄핵은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직무 수행 과정에서 위헌· 위법 행위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는지 정치적 책임, 즉 파면 여부를 묻는 것이다. 6인 체제든 9인 체제든 관계없이 재판관 전원 일치로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올 거라 예상한다. 윤 대통령 탄핵 사유에 비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유는 헌법 위반의 명백성·중대성·해악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고 당시 헌재는 보수 성향 재판관이 많았는데도 전원 일치로 파면 결정이 나왔다. 사안이 복잡하지 않고 증거가 명백해 보여 2~3개월이면 충분히 결론이 날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은 신중히

-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도 탄핵하겠다고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에는 대통령처럼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고 본다. 다만 권한대행 탄핵은 신중히 해야 한다. 자칫 국정 불안과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권한대행이 대다수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헌재 재판관 임명을 지체하거나 특검법 거부권을 계속 행사하면 헌정의 시곗바늘을 다시 '윤석열의 시간'으로 돌려놓는 것이라 탄핵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12·3 계엄을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사사건건 국정을 발목 잡아 온 야당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윤 대통령이 계엄을 발동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정치학계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개정한 현행 헌법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번 사태로 '87 헌법'의 한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통치 구조로서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사실상 실패한 제도임이 드러났다. 박수받고 떠난 대통령이 거의 없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헌법학자로서 한국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권력 구조로 내각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을 저버릴 수는 없다. 개헌을 한다면 4년 중임 정·부통령제로 바꾸고, 대통령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개헌 1순위다."

-새 헌법에 꼭 수정·신설할 내용이 있다면.

"권력 구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틀을 바꾸는 헌법의 전면적 개정이다. 예컨대 헌법 전문 다음의 총강 1조 3항에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 관련 규정, 즉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법치주의 국가다' 같은 내용을 추가하면 좋겠다. 환경권·인격권·안전보건권 등 현대적 기본권을 신설하고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보완하면 최첨단 헌법이 될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법관에게 '헌법적·법률적·직업적 양심을 따른다'는 내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도입 사례를 참고해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에 한해 임명 이후 치르는 첫 전국 단위 선거에서 신임을 묻는 '국민 심사제' 도입도 제안한다."

헌법이 국민 통합의 나침반 돼야

-조기 대선과 개헌의 동시 추진이 가능할까.

"지난 4·10 총선 참패로 국정 동력을 상실한 윤 대통령에게 '임기 1년 단축 및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을 건의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야 합의와 국민 투표 등 규정된 절차를 모두 밟으면 개헌은 짧아도 10개월이 걸린다. 이제 대선 전에 개헌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개헌은 다음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임기 중에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가 됐다."

-오랜 세월 헌법을 연구해온 학자이자 법조인으로서 당부할 말씀은.

"지금 한국사회는 권력자·정치인·이익집단·개인의 극단적인 주장과 선동으로 공동체적 연대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헌법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정치적 이념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관용과 진실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을 헌법적 가치로 시급히 회복해야 할 때다. 이념과 가치관이 다양한 국민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가 헌법이다. 헌법은 국민 통합의 나침반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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