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15일)과 위증교사 의혹(25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여야가 ‘법심(法心) 잡기’ 경쟁에 나섰다. 정부·여당은 9년 만에 처음으로 사법부 예산 비중 확대를 추진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를 겨냥한 공세를 멈춰섰다.
4일 정부·여당에 따르면 내년도 사법부 예산은 올해보다 1388억원 늘어난 2조3126억원으로, 전체 국가 예산안(677조 4000억원)의 0.34%를 차지했다. 9년 만에 사법부 예산 비중이 처음 반등한 것이다. 국가 전체 예산 대비 사법부 예산 비중은 2016년 0.43%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0.33%)까지 쭉 감소 추세였다. 그동안 법조계 안팎에선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법부 예산이 사실상 매년 삭감된 것으로 산림청 예산 규모보다도 못한 수준”이란 지적이 상당했다.
이번 예산 비중 확대엔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한 ‘초과근무 수당’ 등 인건비 증액이 주요했다. 내년도 사법부 초과근무 수당은 올해(492억원)보다 206억원 늘어난 698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법원 관계자는 “그간 법관이 야근해도 초과근무 수당 예산이 모자라서 다른 예산을 전용해 겨우 메꿔 지급하곤 했다”면서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인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지연 해소는 여권이 이 대표 선거법 위반 혐의 등 1심 선고를 앞두고 사법부에 요구해 온 핵심 사안이다. 여기에 예산까지 뒷받침해주자 정치권 안팎에선 “사법부에 당근을 준 것”이란 말이 나왔다. 선거법 사건은 기소 이후 6개월 이내 1심을 선고하도록 하는 강행 규정이 있지만, 이 대표의 선거법 재판 1심 선고는 2022년 9월 8일 기소 이후 2년 2개월이 지난 15일 1심 선고 예정이다.
여당 법사위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통화에서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인건비 증액은 마땅한 조치”라고 했다.
민주당의 ‘법심’ 호소는 한층 적극적이었다. 지난달 31일 김우영 민주당 의원이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직을 사퇴한 게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정감사 과정에서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에게 “법관 출신 주제에”라고 발언하자 “법관 주제에 감히 ‘아버지’ 이재명 대표에 대해 유죄 판결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적개심이 표출된 것”(장동혁 국민의힘 의원) 등 여권 질타에 휩싸였다. 그러자 이재명 대표는 즉각 김 의원을 겨냥해 ‘엄중 경고’(30일) 조치를 취했고, 하루 뒤 김 의원은 당직에서 물러났다. 김 의원은 “일선의 고된 법정에서 법의 양심에 충실하시는 모든 법관님들께도 사죄드린다”라고도 했다.
국감 도중 빚어진 “국회의원이 김영철 검사의 아랫도리를 비호한다”(장경태), “청와대를 기생집으로 만들어 놨나”(양문석) 등의 막말은 놔두고 김 의원만 문책을 받자 “이 대표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사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법사위 관계자)이란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달 27일까지 진행된 법사위 국감에서 유달리 법원 국감을 조기 산회시킨 것도 ‘로우키’(low-key) 대응이었다는 평가다. 서울고등검찰청(23시 16분), 법무부(23시 25분) 등 다른 피감기관 국감이 자정 가까이 진행됐던 것과 달리 대법원(22시 16분), 서울고등법원(19시 09분) 등은 일찍 마쳤다. 국회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선 법관 탄핵까지 밀어붙였던 민주당이 이번만큼은 화력을 한껏 절제하면서 사법부를 향해 정중한 질의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민주당은 ‘법원 숙원’인 법원조직법 개정안(판사 임용 위한 법조 최소 경력을 10년→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지난 8월 ‘친명’ 김용민 의원 명의로 대표 발의한 뒤 한 달 만인 9월 본회의에서 앞장 서 처리했다. 21대 국회에서 동일한 법안을 민주당 의원 다수가 반대·기권표를 던져 부결시켰던 것과 대조적이다.
익명을 원한 법관 출신 정치인은 “국정감사에서 곧잘 난타당하고 정부 예산안에서도 검찰 예산보다 뒷전이 돼 온 게 사법부”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을 가를 11월 재판을 앞두고 사법부가 호황을 맞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