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을 보고 싶은가? 우지의 뵤도인

2025-04-13

석가모니 부처는 기원전 480년에 열반했다. 그 후 500년은 부처의 가르침이 지켜지는 정법시대, 다음 1000년은 경전을 통해서 전해지는 상법시대, 그리고 이어서 가르침이 지켜지지 않는 말법시대가 온다고 중세 불교는 믿었다. 서력으로 따지면 1020년이 그 시작이다.

헤이안(平安)시대 후기인 11세기 일본은 귀족문화가 절정에 달한 동시에 향락과 혼란으로 말법시대 도래의 사회적 불안이 증폭했다. 이를 극복하려 극락왕생 신앙이 유행하고 극락정토를 형상화한 정토종 사원들이 다수 건립됐다. 1053년 세운 교토 인근 우지시의 뵤도인(平等院)은 대표적인 헤이안시대의 정토 사찰이며, 10엔 동전에 새겨진 국보 중의 국보다.

사찰의 중심에 거대한 연못인 아이이케(阿字池)를 팠고, 그 가운데 섬을 쌓고 본당인 호오도(鳳凰堂)를 건축했다. 극락에 있는 연못, 구품연지에 9계급으로 나누어 왕생한다는 정토종의 교리를 형상화한 곳이다. 현세로부터 서쪽으로 무한한 곳에 자리한 극락은 아미타불이 관장하는 세계다. 본당은 서쪽에서 동향으로 앉았고 극락을 지키는 새, 봉황 한 쌍을 지붕에 조각해 봉황당이라 이름이 붙었다.

봉황당은 중앙부에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좌우로 ‘ㄷ’자 모양의 행랑을 달았다. 뒤쪽 꼬리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행랑 다리로 육지와 연결했다. 전체적으로 봉황이 날개를 펴고 서방정토에서 날아오는 모습이다. 실내에 헤이안 조각의 정수인 아미타불 좌상을 모시고 좌우 벽에 52구의 생생한 비천상을 조각했다. 대형 닫집과 천장에 66개의 청동 거울을 달아 반사광으로 실내를 비추니 영락없이 극락이다.

역대 황후들을 배출한 후지와라 가문은 천황가를 압도했고, 이 가문 최고 권력자 요리미치는 내세에도 호사를 누리려 이 사원을 창건했다. 환상적인 본당과 우아한 정원은 ‘극락이 보고 싶은가? 우지의 뵤도인에 가라’는 격언을 유행시켰다. 그러나 선불교는 극락이란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있다고 가르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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