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칩서 생필품까지…'재고 없음'이 우연일까[북스&]

2025-01-24

2021년 미국 서부의 겨울은 유독 추웠다. 생필품과 가구를 판매하는 대형 매장 이케아에는 대부분의 제품이 ‘재고 없음’으로 분류됐다. 침대 등 가구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은 한 달여가 지난 후 겨우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해외 이삿짐 배송을 기다렸던 이주민의 경우 수 개월이 지난 후에야 기다렸던 이삿짐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캘리포니아 롱비치 항구 대란의 여파였다.

뉴욕타임즈에서 오랫동안 경제 분야를 취재한 피터 굿맨은 미국인에게 최악의 해로 기록된 2021년의 공급망 문제를 파고들었다. 신간 ‘공급망 붕괴의 시대’를 통해서다. 모든 공급망의 경로를 취재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거시가 아니라 미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미시시피주에 있는 작은 장난감 제조 업체가 마주한 1년 간의 여정을 쫓았다.

2021년 초 장난감 업체 ‘글로’를 운영하는 헤이건 워커는 미국의 유명 만화의 굿즈 회사인 ‘세서미 스트리트’에 물에 넣으면 불이 켜지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의 미션은 대목으로 꼽히는 크리스마스까지 제품을 무사히 납품하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중국 공장에 주문을 넣고 물품이 만들어지면 해상운송을 통해 다시 완제품을 배송받아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계약이었지만 그해는 달랐다.

시작 단계부터 삐걱였다. 그해 초 중국 공장에는 제품에 필수적인 열가소성 플라스틱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였다. 중국 정부에서 열가소성 플라스틱 자원이 쓰일 제품의 우선순위를 미리 정해둔 데다 갑작스러운 수요 폭증으로 모든 중국 공장이 풀가동됐기 때문이다.

굿맨은 이 같은 공급망 대란의 ‘씨앗’을 적기공급생산방식(JIT)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업계의 관행에서 꼽았다. 일본의 도요타에서 시작된 JIT가 전 세계 모든 산업을 막론하고 퍼져나간 데는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 그룹의 부추김이 있었다고 봤다. JIT를 원가를 낮추고 주가를 높이기 위해 재고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으로 바꿨다는 지적이다.

기업에서 비용을 절감할수록 막대한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맥킨지 입장에서는 기업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자산수익률을 높이는 최적의 수단이 JIT였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뒤 20년 간은 세계화가 탈 없이 진행되면서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저자는 선적 컨테이너의 등장과 기업의 원가 절감 노력이 합쳐지면서 세계 경제가 모든 제품의 생산을 중국 공장에 의존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세상에서 컨테이너는 버튼만 클릭하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배송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이 고리에서부터 급격한 붕괴가 시작됐다.

이는 JIT에 익숙해진 세계 무역이 팬데믹 초창기의 ‘수요 부진’에서 2021년의 막대한 수요 폭증을 대비할 수 있는 체제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적 컨테이너가 부족해졌고 한때 40피트 컨테이너 하나를 보내는 데 운임료는 2500달러 수준이었지만 2021년 9월 글로의 장난감을 수송하기 위한 운임료는 10배가 넘는 2만8000달러까지 올랐다. IMF에 따르면 해상 운임 상승은 이듬해 전 세계 물가를 1.5% 높였다.

여기에 편승한 곳은 거대 소매 독점기업이었다. 글로 같은 회사들이 컨테이너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동안 독점적인 위상을 가진 기업들이 전세 화물선을 띄워 많은 경쟁사들의 매출을 빼앗아오며 거대 소매기업과 선박 컨테이너, 화물 운송 업체들의 삼각 편대가 만들어졌다.

마지막 장은 2021년의 대란 이후 세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으로 우리의 현재와 관계가 깊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은 제조 능력을 부활시키기 위해 제조 시설을 미국 내로 소환하는 한편 해상 운송의 대안으로 육상 운송이 가능한 멕시코 등지를 제조 시설의 첨병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인력이 부족해질 경우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높아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자구책에도 한계가 있다고 본다. 결국 세계의 기본 원리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언제든 ‘메이드인 차이나’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 회복탄력성 이후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534쪽. 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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