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가 통화정책 운용에도 미치고 있다. 한국은행이 환율 상승 가능성을 감수하고 추락하는 내수 방어를 위해 지난달 2회 연속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지만, 계엄 이후 환율이 치솟으면서 달러당 1400원대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수는 더 얼어붙고 있지만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통화정책도 꼬이게 됐다. 전문가들은 민생 회복을 위한 재정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1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3원 내린 달러당 1431.9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1440원선 진입은 방어하고 있지만, 계엄 이후 치솟은 환율은 1300원대로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고환율은 중간재·원자재 가격과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환율이 1300원대 후반인 상황에서 단행한 금리인하가 결국 1450원을 위협하는 환율 상승의 모멘텀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금통위가 금리 인하(연 3.25%→3.0%)를 단행하고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1.75%포인트로 벌어진 것이 환율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의 금리 인하는 재정정책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경기 방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는 “정부가 긴축적 재정정책을 하다보니 한은이 금리를 내리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당시 정부·여당에선 한은의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향후 금리가 더 내려갈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심리가 더 악화된데다, 국정 혼란으로 재정기조 전환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보니 통화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게 됐다는 것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치 불확실성 확대로 확장 재정에 대한 기대가 약해질 가능성이 높고, 한은의 경기 부양 책무가 무거워질 것”이라며 “한은의 경기 부양 속도와 강도가 강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고채 금리는 추가 금리인하 전망을 반영하며 계엄 사태 이후에도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1일 기준으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536%, 10년물 금리는 2.692%로 지난달 초보다 하락했다.
문제는 한은이 금리를 더 인하하기에는 여건이 더 나빠졌다는 점이다. 하나증권은 이날 보고서에서 내년 1분기 평균환율을 달러당 1430원으로 내다봤다. 환율 수준과 변동성 모두 높아 금리인하를 단행하기는 부담스런 상황이다.
시장에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오는 19일(한국시간) 열리는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면 한·미간 금리 차이가 좁혀져 환율 상승을 일단 제약할 순 있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내 물가 둔화 기조가 약해지면서 연준이 내년 금리인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추가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 속도 조절론이 강하게 부각된다면,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치 불확실성 완화와 함께 민생을 위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류 교수는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등 민생 경제 회복이 제일 중요하다”며 “복잡한 정국이지만 추경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불확실성이 빨리 완화돼야 한다”며 “취약 계층에 대한 안전판을 마련하면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