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중환자실 진료 공백을 메우고 의료진의 번아웃을 예방하는 ‘디지털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와 중환자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은 10일 서울대학교병원 우덕 윤덕병홀에서 ‘한국형 ARPA-H 심포지움’을 열고 필수의료 혁신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형 ARPA-H는 미국 ARPA-H를 모델로 한 국가 고위험·도전형 보건의료 연구개발 프로젝트로 △감염병 대응 △난치질환 극복 △바이오헬스 초격차 기술 △고령사회 돌봄 △필수의료 공백 해소 등 다섯 가지 임무를 추진한다. 이번 심포지움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과 주요 대학병원 중환자의학 전문가들이 참석해 응급·중환자 이송 체계와 AI 활용 가능성을 집중 조명했다.
이 자리에서 조우영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중환자의학에서 LLM 모델 사용과 전망’을 주제로 발표했다. 조 교수는 “중환자 진료는 수년간의 훈련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노동집약적 분야지만 전문 인력 부족과 번아웃으로 현장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AI가 환자 악화를 예측하고 전원 과정을 지원한다면 의료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특히 패혈증 진단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중환자 진료에서는 환자 상태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핵심인데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작은 징후도 놓치지 않고 조기 경보를 줄 수 있다”며 “이러한 기술은 특히 패혈증처럼 조기 진단이 생존율을 좌우하는 질환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환자 생체신호 모니터링·영상 판독·진료 기록 요약 등에서 의료진의 업무를 보완할뿐뿐만 아니라 중환자실 내 환자 악화 예측 모델이나 응급환자 전원 체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연구팀이 개발 중인 ‘자비스’ 프로젝트도 소개했다. 전자의무기록(EMR) 20만 건과 전원 의뢰서 2000 건을 학습한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환자 악화를 예측하고 자동으로 전원 의뢰서와 퇴원 기록지를 작성하는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챗GPT만으로도 이렇게 편리한데 의료 특화 ‘자비스’가 도입되면 현장의 부담이 크게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조 교수는 “LLM은 할루시네이션(그럴듯한 오류)을 낼 수 있고 국내 개인정보보호 규제가 모호해 고품질 데이터셋 구축이 어렵다”며 “EMR 표준화와 규제 명확화 같은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