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백악관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치라는 게 참 어렵군요. 하지만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이 13일 백악관에서 주고받은 덕담이다. 이날 만남은 원활한 정권 이양 작업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2024년 판 대선극의 마지막 대사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얄궂다. 4년 만에 입주자와 퇴거자의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만 4년 전과의 차이는 당시 트럼프가 두 페이지짜리 편지만 남기고 백악관을 떠나는 바람에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선극이 끝나면서 무대에는 새로운 것이 준비 중이다. ‘트럼프 정부 시즌 2’다. ‘시즌 1’보다 출연진은 더 화려하고 제작 여건도 좋다. 정부 요직에 충성심 강한 인물들이 속속 발탁되고, 연방상·하원도 공화당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마음이 맞는 배우들과 제작비 걱정 없이 마음껏 ‘시즌 2’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됐다.
그럼 ‘시즌 2’에는 어떤 줄거리가 펼쳐질까? 대외 정책 기조는 ‘시즌 1’의 연장선이 될 전망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다. ‘세계 경찰’의 역할은 그만두고 미국의 국익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등 우방국들이 긴장하는 이유다.
국내 정책 역시 ‘시즌 1’의 확장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공약에 나타난 키워드는 감세,규제완화,연방정부 축소,불법체류자와의 전쟁 등이다. 이중 주목되는 것이 감세, 규제완화 등의 경제 정책이다. 트럼프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경제 이슈이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걱정에 지친 ‘워킹 클래스’ 유권자들은 대거 트럼프에게 표를 줬다.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관심사고, 이를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표상의 경제는 괜찮다고 하지만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고 식료품과 개스 가격, 주거비용이 오르는 상황은 참지 않았다.
이런 민심의 흐름은 선거 당일 실시된 에디슨 리서치의 출구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46%가 4년 전보다 살기가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이는 4년 전 선거 때의 20%에 비해 배 이상 급증한 비율이다. 당연히 후보의 경제 공약을 보고 투표를 결심했다는 응답자가 32%나 됐다. 낙태(14%)와 이민(11%) 이슈를 훨씬 앞질렀다.
이는 많은 히스패닉, 아시안 유권자가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이유이기도 하다. 히스패닉 남성 유권자의 55%가 트럼프에게 한 표를 줬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득표율이 2020년 선거 때와 비교해 19%포인트나 급증했다. 아시아계 유권자의 득표율도 4년 전 34%에서 39%로 높아졌다. 반면 트럼프의 백인 유권자 득표율은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결국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에 실망한 히스패닉과 아시안 유권자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가른 셈이다.
이 두 그룹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으로 분류됐다. 이민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지지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표심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민주당에게는 큰 충격이 될 듯하다.
‘시즌 1’과 달라진 것도 있다. 감세 확대와 연방정부 축소다. 두 정책은 별개로 보이지만 연관성이 깊다. 법인세 추가 인하, 팁과 오버타임 수입, 사회보장연금 비과세 등으로 인한 세수 부족 문제를 연방정부 지출 축소로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이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비벡 라마스와미다. 머스크는 현재 500개 가까운 연방정부 기관과 관련 “99개로 줄여도 충분하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트럼프의 시계가 이미 작동을 시작한 셈이다.
유권자들은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추상적 가치는 잠시 미뤄두고 경제적 실리를 택했다. 과연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