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2021년 10월 경기 파주 지역에 편의점을 열었다. 매출은 예상했던 만큼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매출은 반등하지 않았다. A씨는 2023년 초 본사에 폐점 의사를 전달했다. 본사는 “지금 해약하면 위약금을 많이 내야 한다. (위약금을 안 낼 수 있도록) 양도·양수를 도와주겠다”고 답했으나 이후로도 진척이 없었다.
그사이 적자는 쌓였다. A씨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밀린 임금을 주지 못해 노동청에 신고를 당했다. 대출을 받아 임금을 지급했지만 점점 늘어나는 적자에 지난 4월부터 매장 운영을 중단했다. A씨는 이달 들어서야 위약금 8000만원 가량을 내고 계약을 해지했다. A씨는 “위약금 때문에 쉽게 폐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배달업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데 대출을 갚아나갈 생각을 하면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A씨와 같이 경영난을 겪는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폐업할 때 본사에 위약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 점주들의 협상력을 높이고, 한계 상태에 내몰린 자영업자에게 ‘출구’를 마련해주겠다는 취지다. 다만 프랜차이즈 본사 측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어 세부 기준을 정하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국정기획위가 지난 20일 제시한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에는 가맹 점주에 계약해지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국정과제로 담겼다. 지속적인 수익성 악화로 경영난을 겪는 점주가 프랜차이즈 본사와 계약을 해지하려 할 때 위약금을 면제해주는 것이 골자다. 위약금 면제 기준으로는 ‘상권 급변에 따른 적자 누적 등 불가피한 경우’가 포함됐다.
현행 가맹사업법 14조에는 가맹본부의 계약해지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점주의 해지권에 관한 규정은 없다. 상법에는 관련 내용이 있으나, 가맹사업법 같은 특별법이 아닌 탓에 그간 실제 적용이 쉽지 않았다는 게 공정거래위원회 설명이다. 공정위는 가맹사업법에 ‘계약해지권’을 포함하면 점주와 본사 간 협상에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점주에 계약해지권을 부여하자는 움직임은 악화일로 상태인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사업자(100만8000명)로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2023년부터 2년 연속 증가세다. 가맹사업도 추세가 비슷하다. 지난 4월 공정위의 ‘2024년 가맹사업 현황 통계’보면 발표 따르면 지난해 프랜차이즈 브랜드 숫자는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2023년 기준 외식업 가맹점 폐점률도 14.9%로 1년 전보다 0.4%포인트 올랐다.
정부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적자가 누적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전기료 등 재정 지원을 해왔으나, 최근에는 한계에 내몰린 자영업자의 폐업을 지원하는 등 출구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정종열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자문위원장은 “프랜차이즈업은 일반 자영업과는 달리 진입장벽이 낮고 퇴거 장벽이 높은 대표적 업종”이라며 “편의점 등 일반 업종은 관행이 다소 개선됐음에도 소규모 업종을 중심으로 위약금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폐업 위약금은 본사와 점주 간 주요 분쟁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가맹분야 분쟁조정신청(584건)의 신청 이유로는 ‘부당한 손해배상의무 부담(계약 중도해지에 따른 과도한 위약금 청구’(143건)가 가장 많았다. 지난 2020년에 ‘개업 후 1년 내에 본사가 제공한 예상매출액을 밑돌 때’는 폐업위약금을 면제하도록 가맹사업법이 개정됐으나 위약금 분쟁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제가 안 좋으면 폐업이 늘고, 그에 따른 위약금 분쟁도 증가한다. 최근 경기상황이 어렵다 보니 관련 민원이 많아졌다”면서 “위약금 때문에 폐업을 못 하고 계약을 기간을 채우는 경우까지 합하면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향후 구체적인 위약금 면제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프랜차이즈 본사 측은 점주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종백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정책홍보팀장은 “매출 부진이 본사만의 책임이 아닌데도 본사가 다 떠안으라는 이야기”라며 “점주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고, 재정 여력이 없는 소규모 프랜차이즈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공정위가 제정한 표준계약서 내용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15년 제정된 편의점업 표준계약서에는 ‘경쟁 브랜드의 근접출점 재건축·재개발 등으로 상권이 급격히 악화한 경우’ ‘질병·자연재해 등으로 가맹점 운영이 불가한 경우’ 등으로 수개월 이상 영업수익률 악화가 지속될 경우 영업위약금을 면제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구체적인 개월 수는 점주와 본사 간 협의로 정하도록 했다.
최종열 CU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은 “표준계약서는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그간 가맹본부들이 잘 수용하지 않았다”면서 “과잉출점 상태인데 폐업할 길도 막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4~5년씩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위약금이 면제된다면 적지 않은 수가 폐업 신청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도 ‘무조건 5년은 해야 한다’는 것은 점주에 가혹한 측면이 있다”면서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주변 상권이 변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위약금 면제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