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영화 <밀정>속 푸른 눈의 아나키스트 정체 밝혀졌다

2025-05-29

폭탄 제조 전문가로 식민지 시기인 1920년대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으로 유명한 헝가리인 ‘마자르’의 실제 이름과 얼굴이 확인됐다. 독립운동에 기여했지만 신원과 행적이 불분명해 공을 인정받지 못한 그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경향신문이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를 통해 입수한 논문 ‘Hungarian man among the Korean freedom fighters’(한국 독립운동가들 중의 헝가리인)에 따르면, 그동안 학계에서 ‘마자르’라고 알려졌던 헝가리인 남성은 가보르 마자르인 것으로 확인됐다.

논문은 2018~2022년 주한 헝가리 대사를 지낸 헝가리 부다페스트 가톨릭대 초머 모세 교수(한국학과 학과장)가 최근 헝가리-아시아 관계사 플랫폼 ‘오리엔트 프로젝트’에 발표한 것이다.

마자르는 2016년 개봉한 영화 <밀정>에 등장하는 헝가리 출신 아나키스트(극중 이름은 루비크)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탁월한 솜씨를 지닌 폭탄 제조 전문가였던 마자르는 300여개의 폭탄을 조선으로 밀반입하는 데 동참했으며 1923년 1월 김상옥 열사가 종로경찰서에 던진 폭탄도 그가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확인된 적이 없다. ‘마자르’라고 불린 것은 단순히 그가 헝가리(마자르인)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일부에서는 독일인이나 아일랜드인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마자르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러시아군 포로가 된 뒤 몽골로 흘러들어가 당시 몽골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이태준을 만났고, 그의 소개로 의열단의 무장투쟁을 돕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논문에 따르면 마자르는 1896년 셸메츠바녀(현재는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전체 이름은 ‘가보르 요제프 마자르’다. 폭탄 제조법을 알고 있었던 것은 기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어떻게 몽골까지 가게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양지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는 2019년 논문에서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포로가 된 헝가리인 수십만 명이 1917년 제정 러시아 붕괴 후 시베리아나 몽골, 연해주, 만주 등지로 이송됐다면서 마자르 역시 전쟁 포로였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모세 교수 논문에 따르면 마자르가 전쟁 포로였는지를 입증할 확실한 자료는 없다. 다만 마자르의 여동생 조피어는 1931년 경찰 조사에서 오빠가 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 포로가 됐으며 상하이의 여러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일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태준이 마자르를 알게 된 경위를 알려주는 단서도 나왔다. 논문에 따르면 1920년 12월에서 1921년 2월 사이에 당시 몽골 수도 우르가(현 울란바토르)에서 헝가리인 포로들은 폭탄 제조 공장을 운영했다. 모세 교수는 이 공장에서 이뤄진 폭탄 폭발 시험 현장에 중국 장교들이 참석했으며 이태준이 이곳에서 마자르의 존재를 알게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마자르의 해방 이후 행적은 불투명하다. 논문에 따르면 1948년 월북한 김원봉은 1955년 북한 대표단 자격으로 헝가리를 방문했으나 마자르에 대해 언급한 기록은 없다.

2024년 11월 현재 서훈을 받은 독립 유공자 1만8162명 중 재외동포를 제외한 외국인은 76명이다. 마자르는 여기 포함돼 있지 않다.

모세 교수는 최근 김 교수에게 보낸 e메일에서 “지난 수년간 헝가리 외무부 국방부 자료를 통해 마자르의 신원을 밝혀냈다”면서 “100여년 전 인물이라 추적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신원과 행적을 밝혀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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