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헝가리는 하락하던 합계 출산율을 반등시킨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양국 정부가 적극적인 가족 정책을 펼친 덕분에 독일, 헝가리의 합계출산율은 2000년에 각각 1.38명, 1.32명에서 2021년 기준 1.58명, 1.61명으로 뛰었다.
하지만 최근 3년 사이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해 기준 양국의 합계출산율은 1,35명, 1.51명으로 도로 내려앉았다. 서울경제신문은 지난 9월 각국 정부 산하 인구 연구소를 방문해 최근 하락세에 대한 분석과 추후 정책 기조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독일 "미래에 대한 공포가 출산 막는다... 불확실성 줄여야"
독일 연방정부 내무부 산하의 연방인구연구소(BiB)는 독일 인구 변화의 핵심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연쇄적 사회적 문제와 대응 방안 등을 연구해 연방 정부 및 부처에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만난 연구 책임자 마틴 부자드(Martin Bujard) 박사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뤄진 가파른 합계출산율 하락세와 관련해 "다양한 외부 변수와 이에 따른 사회적 불안감 고조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부자드 박사는 “최근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출산율 하락세는 청년층의 복합적인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라면서 연달아 터진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당시 임산부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승인하지 않은 탓에 여성들이 임신을 미룬 효과가 뒤늦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뒤이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진 데 따른 심리적·경제적 억제 요인도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함께 물가가 치솟으며 가족계획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때문에 부자드 박사는 "당장의 내림세가 단기적인지, 장기적일지 판단할 수 없다"면서 독일 정부가 선뜻 최근의 하락세에 대한 새로운 대응책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은 독(poison)처럼 출산율에 즉각적이고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이를 높이기 위해 '내일 곧바로 기후 위기를 멈추고, 전쟁을 끝내겠다'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현 청년 세대가 미디어로 전 세계 위기를 접하는 만큼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팬데믹과 전쟁이 끝나더라도 기후 위기를 비롯해 훨씬 많은 잠재적 위험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위기를 인식하고, 높은 불확실성을 품고 있습니다."
다만 박사는 여전히 독일의 탄탄한 사회 복지 체계가 합계출산율 하락 방어에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박사는 그 근거로 코로나19 확산 초반의 독일 월별 출산율 추이를 제시했다. 2020년 5월 1차 봉쇄 조치가 완화된 뒤 9개월 뒤인 2021년 1월 기준, ‘복지 강국’인 스웨덴과 독일에서는 모두 이례적인 전월 대비 상승세가 나타났다.
박사는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장기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이례적으로 출산율이 올랐고, 추후 하락세도 덜했다"면서 "이는 독일의 고용 안정성 덕에 사람들의 불확실성이 낮은 편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는 '단축근로제(Kurzarbeit)'와 같이 기업의 단기 수익이 줄더라도 구조조정을 막는 고용 보호 정책이 있고, 일자리를 보장하는 육아휴직 제도도 마련돼 있습니다. 누구도 실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박사는 추후 독일이 보완해야 할 문제로서는 유치원 등 영유아 보육 시설의 충원을 꼽았다. 여성이 첫 아이를 출산하는 평균 연령이 늦춰지는 가운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커리어 욕심으로 ‘안’ 낳는 것이 아니라 돌봄 여건이 받쳐주지 못해 계속 출산을 미루다 끝내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부자드 박사는 이와 관련해 집필한 ‘삶의 러시아워(The Rush Hour of Life)’ 연구를 소개하며 “생애 주기 중 25세~40세 사이에 양육과 업무에 각각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기간이 겹친 탓에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현상에 대해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서부터 부모의 업무량과 노동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며 돌봄 인력과 보육 시설을 확충해 부모의 시간적 압박을 해결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헝가리, ‘노산’이 저출산의 핵심 원인…"첫 아이 출산 연령 앞당기도록 유인"
헝가리 역시 최근의 출산율 하락세 원인으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꼽는다. 2018년 출범한 헝가리 정부 산하 인구가족통계연구소(KINCS)은 헝가리의 인구정책 및 현황을 조사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통계자료를 수집·분석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뚠데 푸레스 연구소장은 “헝가리는 전쟁 발발 이후 물가가 2년여 만에 34% 급등하는 등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지만 임금 상승률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면서 경제적 부담이 출산율을 떨어트렸다고 해석했다.
한편 헝가리가 1956년부터 ‘건강 위협·강간 피해 등 원치 않는 경우에도 출산을 강제한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낙태를 조건부로 허용한 점도 현 저출산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뚠데 소장은 “1950~60년대 태어난 ‘가임기 여성’의 자녀는 보통 70~80년대생이다. (본격적으로 낙태가 허용된) 이후에 태어난 1980~90년대생은 이전 세대보다 수 자체가 훨씬 적은데, 이들이 현 ‘가임기 인구’이기에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헝가리는 독일보다 현 출산율 하락세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입장이다. 뚠데 소장은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은 헝가리의 15-49세(가임기) 여성 수가 2000년대 초반 250만 명에서 2100년에 약 160만 명으로 약 3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 감소세는 선형적이지 않다”면서 “첫 25% 감소가 2030~2032년까지 이뤄진 뒤, 나머지 10%의 추가 감소가 2032년~2100년 사이 천천히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미 2030년까지의 급격한 감소세는 예견됐기에 현재의 출산율 하락세가 ‘절정’이고 점차 약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헝가리는 신혼부부와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출산·육아 비용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유지할 방침이다. 헝가리는 지난해부터 25~30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소득세 감면 제도를 도입했다. 젊은 어머니들이 최소 1명의 자녀가 있는 경우 개인 소득세(15%)를 전액 면제한다.
젊은 여성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학자 대출금 탕감 제도도 확대했다. 현재 헝가리에서는 만 30세 이하 여성이 첫 자녀 출산 시 상환 일시 중단, 둘째 자녀 출산 시 대출 50% 탕감, 셋째 자녀 출산 시 학자대출금을 전액 탕감해 준다. 이와 관련해 뚠데 소장은 “30대 중반~40대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불임 문제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연령대다. 때문에 최대한 빨리 아이를 갖고 싶은데 경제적인 부담이 있는 부부를 위한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추가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