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에 운동화, 셀프 수선 확산...거리의 구두수선공이 사라진다

2025-09-02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구두수선소. 점심시간을 앞두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이 넘쳐났지만, 이곳을 찾는 이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40년 넘게 구두를 수선해 온 조모(75)씨는 “80년대 구둣방이 잘 나갈 땐 월 300만원 이상 벌었는데, 요즘은 종일 1만원도 못 벌거나 아예 공 치는 날이 허다하다”며 “7~8월 매출액 평균이 45만원인데, 재료비ㆍ전기세 빼면 최저임금도 안된다”고 말했다.

실제 조씨가 달력에 적은 장부를 보니 실제 7월 평일 중 매출이 0원인 날이 8일에 달했다. 그는 “젊었을 땐 이 직업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큰 착각이었다. 이 나이에 다른 일을 새로 배울 수도 없으니 그냥 버티는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거리의 구두수선공이 사라지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117개소에 달했던 서울시 구두수선대는 2019년 979개소, 2021년 882개소로 빠르게 줄고 있다. 올해 7월 기준 725개소로 10년 새 35.1%(392개소)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8개소가 사라졌고, 9월~10월 자치구별 시설물 조사를 해 철거를 진행할 예정이다. 통계청 직업별 취업자 통계를 보면, 구두장이가 포함된 전국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 수도 줄었다. 2017년 상반기 239만2000명에서 2024년 하반기 228만명으로 11만2000명(4.7%) 감소했다.

이는 ‘정장에 운동화’ 차림이 일상화하고, 싸게 사서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 문화가 확산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임호선 숙명여대 의류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3년 서울 소재 대학교 학생 및 교직원 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들조차 구두보다 운동화를 더 많이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의 경우 현재 소유한 운동화는 3~4켤레, 구두는 1~2켤레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운동화 비중이 구두의 2~3배인 셈이다. 신발 구매 시 가장 우선순위로 꼽는 건 착화감(106명ㆍ35.3%)으로, 점점 더 편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추세다.

더 이상 구두수선 일을 배우려는 청년은 없고, 기존 수선공은 고령화하는 추세인 것도 원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구두수선대 운영자의 평균 연령대는 2016년 62세에서 올해 69세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날씨가 궂거나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 등으로 가게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을 임의로 단축하는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구두수선소가 줄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정작 필요할 때 이용하기도 어려우니 소비자는 외면한다. 직장인 김모씨(37)는 “구두 굽을 갈고 싶은데 회사 근처 구둣방은 자취를 감췄고, 집 근처 구둣방은 퇴근하면 이미 문을 닫아서 며칠째 헛걸음을 한 경험이 있다”며 “이런 불편함 때문에라도 값싼 구두나 운동화를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젠 시간과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온라인 구두수선소’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접수하면 직접 구두를 수거해서 수선한 다음 다시 집으로 배송해주는 시스템이다. 구두 굽이나 밑창 보강 정도는 셀프 수선 키트를 구매해서 직접 하는 방법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격식보다는 편의를 중시하는 데다, 발 건강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구두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다고 본다”며 “의식주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이와 별개로 좋은 구두를 만들고 수선하는 기술을 어떻게 보존할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두수선공 조씨는 “구두 수선 기술이 예전만큼 존중받지 못하게 된 것 같아 아쉽지만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손님 한두명이라도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휴식 공간이자 사랑방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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