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人] 모두의 장례식을 부탁해... "위로의 장례식을 꿈꿔요"

2024-11-22

김민석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국장

<편집자註> 시민사회는 '시대의 창(窓)'일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의 장(場)'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선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人)과 쉴새없이 소통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스토리人] 코너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혼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무연고 사망자. 해마다 고독한 죽음은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2년 1000여 명에서 지난해에는 5400여 명으로 10년 새 5배 이상 증가했다. 무연고 사망자란 법이 인정하는 연고자가 없거나, 있어도 경제적 어려움 등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를 말한다.

한 사람의 일생을 무연고 사망자란 단어 하나로 재단할 수 없지만 어감에서 뚝뚝 떨어지는 지독한 쓸쓸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32세 청년 김민석 씨는 그런 편견을 거부한다. “무연고 사망자란 딱지는 고인의 생전 삶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단지 관(棺)의 무게에만 신경이 갈 뿐이다. 가벼우면 가벼운대로 무거우면 무거운대로. 왜 일까. 김민석 씨는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에서 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애도받을 권리와 애도할 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는 그를 NGO저널이 만났다.

- 무연고 사망이지만 가족이 있는 경우가 70% 이상이라고 하셨죠. 일을 하면서 접한 사연 중 잊기 힘든 사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음...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 순간 모든 경우가 다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요, 아무래도 저와 같은 또래의 장례를 치를 때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93년생인데 저와 동갑의 나이에 사망한 분 장례를 몇 번 치른 적이 있어요."

- 그렇군요. 그분들은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까.

"사인(死因)은 다양해요. 지병 등 다른 무연고 사망자와 이유는 대개 비슷하죠. 고아인 경우도 있었고, 흔히 얘기하는 보호 종료 아동으로 가정을 꾸리지 않은 채 살다 죽음에 이른 거죠. 경제적, 건강상의 이유 등 여러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당해 무연고 사망자와 마찬가지 처지가 된 거예요. 그 분들 각각의 사연보다는 저는 관의 무게 같은 것에 더 신경이 쓰여요."

- 관 무게에 더 신경이 쓰인다고요?

"네, 관이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물론 추측이지만 관이 가볍다는 건 고인의 체구가 그만큼 작았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또 원룸이나 반지하와 같은 거주지를 알게 되면 그 관의 주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미처요.

제 선입견일수도 있겠지만, 일의 특수성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연고 사망자, 보통은 그분들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 돕다보면 우울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감정들을 떨치기 위해 특별한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죠.

음...일단 고인이 모두 불행하고 힘들게 살았을 거라는 건 선입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모든 무연고 사망자가 다 빈곤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요. 무연고 사망자라는 건 사망 이후에 장례를 치를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나눔과나눔이 장례했던 무연고 사망자 중 대학교수를 하셨던 분도 있고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도 있었어요. 굉장히 풍족한 생활을 했던 공무원 출신도 있고요."

- 그렇군요. 제 선입견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다수의 경우는 아니잖습니까.

"물론 많은 분들이 빈곤한 삶을 살았다고 추정되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이 불행하게 살았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무연고 사망자의 핵심은 마지막 장례를 치를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니까요. 그러니까 이럴 수 있는 거거든요. 가령 고아 출신으로 가정을 꾸리지 않은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이 분은 사교성이 좋아 친구가 많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아도 법적으로 친구가 바로 장례를 치를 수는 없어요. 친구들이 장례 안내도 못 받고 기다리게 되고 결국은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장례식장 빈소는 북적거려요. 그를 아끼는 친구들이 찾아오니까요. 이런 경우를 봐도 무연고 사망자가 꼭 불행하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없죠.

전직 복싱 챔피언이었는데 어쩌다 무연고 사망자가 된 경우도 있죠. 부모님이 돌아가신 외동이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거나, 결혼을 했어도 자녀가 없거나 이혼을 했다든가, 정말 다양한 경우와 갖가지 이유로 무연고 사망자가 됩니다. 말 그대로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다는 것이지 그 사람의 생전 삶과는 거의 관련이 없어요. 비록 무연고 사망자이지만 생전에 사람들과 교류도 활발히 하고 굉장히 즐겁게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케이스도 많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혼 인구가 늘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계획이 없는 딩크족이 증가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도 무연고 사망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꼭 모든 무연고 사망자가 불행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일 수 있다, 또 설령 상당수가 실제 빈곤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여겨지더라도 그렇다고 제3자가 그분들을 불행하게 살았다, 너무 안타깝다고 단정해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시혜적인 시선이라서 가급적 그분들의 삶을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 듣고 보니 그렇군요. 무연고 사망자란 표현이 주는 어감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러면 현재 무연고 사망자 법적인 정의라던가, 장례와 관련된 현행법은 어떻게 돼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실제 어떻습니까?

"‘무연고 사망자’의 정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보건복지부 지침이 정의하고 있는데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자면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또는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에요. 여기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연고자의 범위는 마찬가지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정의하고 있는데요. 고인의 장례를 바로 치를 수 있는 혈연의 범위는 ①배우자, ②자녀, ③부모, ④손주, ⑤조부모, ⑥형제자매로 매우 좁은 상황입니다. 조카나 이모, 삼촌, 며느리, 사위 등은 포함이 안 되는 것이죠."

-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편견과 별개로 어쨌든 누구나 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취미생활이나 특별히 하는 활동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감정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분들은 꼭 병원에 가라고 항상 얘기합니다. 저도 기질적인 우울감이 있어서 병원에 다니며 전문가와 꾸준히 상담하고 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 외에는 평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듯 저도 영화 보고 책 읽는 것 좋아하고 산책을 자주 하기도 하죠."

- 이 일을 해오면서 우리나라 장례문화에 대한 생각이나 어떤 인식이 정립이 돼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과거와 다른 유행이랄까 추세랄까 우리 장례문화에서 혹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는지도 궁금하네요.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장사계획을 발표하면서 산분장(※화장(火葬) 후 골분을 산·강·바다 등에 뿌리는 것)을 발표했어요. 유골을 매장하거나 납골당에 모신다던가 자연장이나 수목장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그중 산분장 방식을 제도화하겠다고 발표한 거죠. 그동안 시중에는 유골을 아무데나 뿌리면 불법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 그럼 불법 아닌가요?

"그게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지 불법은 또 아니거든요. 정부 발표는 그러니까 이제 그걸 제도화하겠다는 거죠. 그것 때문에 추모공원 등 관련 시설을 운영하는 분들이 굉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무래도 산분장이 안착되면 본인들의 수익이 줄어들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복지부가 산분장을 제도화하겠다고 했고, 장사시설 수급계획에 무연고 사망자 등을 위한 공영장례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겠다는 내용도 담아 발표했는데 저희로선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공영장례를 드디어 복지의 영역으로 가져오고 충분히 관심 갖고 대응하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어요."

- 나눔과나눔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시작됐는지는 일전에 저희가 ‘NGO오디세이’를 통해 소개해 알고 있지만 국장님 개인은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20년에 합류했어요. 정말 우연한 계기였죠. 음악을 오랫동안 했었어요. 실용음악이 전공이에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월급노동자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지다 나눔과나눔 채용공고가 올라온 걸 봤어요.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고 홈페이지에 접속해 그동안의 활동들을 살펴봤는데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어쨌든 적어도 저 개인적으로 죽음과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걱정은 없으니까, 이곳에서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고 다행히 채용이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4년 정도 됐네요."

- 저의 편견일수 있겠지만, 보통은 죽음과 관련된 일을 꺼리는 정서들이 있잖아요. 특히 청년의 입장에서 썩 내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히 꺼릴 건 없었어요.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을 한 번도 안 가본 것도 아니었고요. 위패나 영정을 모신다든지 하는 경험은 개인적으로 해봤기 때문에 두렵다거나 꺼려진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또 세월호 참사 때 안산에서 장례식장을 다녀온 경험도 많이 했고요. 그런 경험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없앴던 것 같아요.

얘기를 돌려서 아까 질문하신 장례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직도 가부장적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이런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상주는 꼭 남성이어야 된다던가 하는 점이요. 제가 예전 머리를 길렀을 때 한 번은 운구 기사님이 제 뒷모습을 보고 달려와서 저를 말리더라고요. 여자가 관을 들려고 하는 줄 알고 자기가 해주겠다고 나선 거죠. 여자는 관을 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공영장례 현장에서 여성을 처음 상주로 세울 때도 굉장한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성평등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현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여성이 상주를 맡아 하고 있어요. 어쨌든 그런 가부장적인 요소들이 장례현장에서도 많이 개선돼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또 나눔과나눔에서는 ‘내 뜻대로 장례’라고 부르는데요, 내가 원하는 장례를 치를 권리라고 이야기하는데, 자기결정권이나 권리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장례라는 건 내 삶의 마지막 이벤트라는 점에서 더 생각해봐야 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한 상(想)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내 장례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하죠.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는 점에서 내가 간 뒤 남아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이 나를 최대한 잘 떠나보낼 수 있도록 말이죠.

최근에 ‘나의 장례식을 부탁해’라는 워크샵을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당신이 원하는 장례가 어떤 장례인지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객관식 문항도 만들어 스스로 점검해보도록 하는 행사였죠. 참여한 시민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스스로 확인하면서 ‘장례식을 이렇게도 해볼 수 있구나’ 생각하게 만든 거죠.

병원 장례식장의 흔한 장례뿐 아니라 집에서의 장례 등 여러 대안적 장례 모습을 소개했는데, 내 장례를 충분히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에너지와 여력이 있다는 점을 많은 분들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장례와 관련한 영리업자들은 싫어할 수 있겠네요. 하하."

- 장례비용이 어지간히 비싸야 말이죠. 평균 비용이 1천만 원에서 1천5백만 원 정도 되는 것으로 통계에 나오더군요.

"예를 들어 가족이, 돌아가신 어머님이 가격이 가장 싼 관과 수의 등 저렴한 것으로 마련해 화장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는데 장례식장 직원이 벌컥 화를 내더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거죠. 그런 식으로 남은 가족의 심리를 자극하는 일이 일부 장례식장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물론 다수의 업자들은 양심적으로 일한다고 믿고 싶습니다만.

모든 것을 시장 논리에 맡겨놓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장례의 영역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 놓으니 시장 안에서 상술이 개입하고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거죠. 그래서 공공성이 담보돼야 하는 거예요. 현재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병원은 있지만 장례식장은 없어요. 만만치 않은 장례비용은 서민 삶에도 부담이 되요. 그래서 나눔과나눔은 공영장례가 지금처럼 무연고 사망자나 일부 저소득 시민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로서 안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삶의 흔적이 다양한 많은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고 돕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본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죠. 일단 상속에 관한 문제는 법적으로 확실하게 해두자는 생각으로 제가 가진 재산을 매년 한 번 정도 리스트를 만들어 업데이트합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비싼 맥북은 누구에게 주고 오랫동안 아끼고 공들여 연주해온 기타는 누구에게 주고 장비는 또 누군가에게 주고, 책은 이런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게끔 해주고, 제 통장계좌에 남은 돈은 나눔과나눔 후원금으로 썼으면 좋겠고... 이런 식으로 유연장을 1년에 한 번 정도 갱신하면서 업데이트해요."

- 본인 장례는요.

"그 외에 장례식에 관한 건 남은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되, 수의와 기타 것들은 가장 저렴한 것들을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아, 그리고 장례식장이나 빈소에서 꼭 틀어주었으면 하는 영화리스트를 최근에 만들었어요. 살아있을 때 꼭 보라고 추천하지만 다들 안 보잖아요. 그러니 내 빈소에서라도 이 좋은 영화들 꼭 봐라 하는 심정으로요."

-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네요.

제가 뽑았던 영화 중 하나는 파벨만스에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죠. 또 주로 봤을 때 기분이 안 나빠지는 영화들, 개운한 영화들을 목록에 올렸죠.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이라는 영화도 있네요. 아무튼 이런 영화들로 구성해서 내 장례식에 왔으니 이 좋은 영화나 보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저는 딱 이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어요. 누구나 맞게 되는 마지막, 내가 편히 저 세상으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나를 잘 떠나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죽은 뒤 장례를 어떻게 치르든 알게 뭐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아닌 남은 사람들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 이런 문구가 있어요. “너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나의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누군가를 잘 떠나보내지 못하면 남은 사람들은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유예된 애도의 과정에서 굉장히 괴롭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됩니다. 내 삶에서 장례까지 생각하는 것은 전체의 삶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분에게도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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