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집안으로 들이닥친 전체주의, 뉴스가 현실로

2024-11-21

탄압의 시대 겪는 아일랜드 배경…현재 시제 활용해 몰입도 높여

남편 아들 생사조차 모르는 주인공…권력이 파괴하는 일상 묘사

예언자의 노래 |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은행나무 |364쪽 |1만8000원

여느 날처럼 적당히 피곤하면서도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미생물학자이자 네 아이의 엄마인 아일리시는 어둠이 깔린 정원을 바라보던 중 갑작스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방문자는 교원 노조 간부인 그녀의 남편 래리를 찾으러 온 GNSB(사복 경찰)들이었다. 경찰들은 명함을 전달하며 남편에게 최대한 빨리 연락해줄 것을 독촉하며 돌아갔다. 아일리시는 불길한 느낌을 떨치려 하지만, 문밖에 있던 “어둠의 일부가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느낀다.

2023년 부커상 수상작인 폴 린치의 소설 <예언자의 노래>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전체주의가 일상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문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한 전체주의의 침입은 이내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평범한 삶의 기반을 모조리 무너뜨리며 아일리시를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국민연합당은 2년 전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얼마 전부터는 비상대권법을 발효해 GNSB의 권한을 강화했다. 헌법에 따른 당연한 권리들이 점차 제약받기 시작했고, 여기에 반대하는 노조는 탄압의 대상이 됐다. 아일리시는 여전히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으려 애쓰며 “우리나라에는 헌법이 있다”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도 집회에 나가는 래리를 막아서지 못하고 그날 뉴스에는 곤봉을 든 경찰이 시위대를 마구 폭행하며 거리 구석으로 몰아넣고 최루탄이 퍼지는 장면이 보도된다. 래리는 체포됐고, 변호사 접견이나 구금 항의 같은 기본권조차 박탈당하며 생사조차 불분명해진다.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17세 미성년자에게 징집 명령이 내려지고 경찰과 공안을 비판한 학생들은 체포돼 사망한다. 물가는 치솟고 마트의 물건들이 동이 나는 등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임계점을 넘어선 권력의 일탈에 곳곳에서 반란군이 조직되고 아일리시의 큰 아들 마크도 반란군에 합류하기 위해 몰래 집을 떠난다. 내전의 한복판에서 공포에 떠는 남은 세 아이와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도 챙겨야 하는 아일리시는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으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모든 일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어났고, 아일리시는 어마어마한 힘에 붙들린 것처럼 떠밀려 갔다. 이제 허우적대는 기분도 아니고 급류에 휩쓸린 기분이다.”

폴 린치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서구사회의 명백한 무관심”이 집필 계기였다고 밝히며 <예언자의 노래>에서 시리아의 잔혹한 현실을 통째로 아일랜드로 옮겨왔다.

소설 속 아일리시는 뉴스에서 누락된 이야기들에 대해 말한다. “뉴스가 나오자 그녀는 분노로 몸을 떨면서 라디오를 꺼버리고 생각한다. 이건 뉴스가 아니다. 뉴스가 전혀 아니다. 모래 주머니에 나른하게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군인을 집 안에서 내다보는 민간인이 뉴스다…일주일 동안 빨간불이었다가 결국 꺼져버리는 신호등,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한 자동차, 점점 쪼그라드는 거리의 분위기, 셔터를 내린 가게들…통화가 너무 위험해서 이제 전화하지 않는 장남, 그 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뉴스다.”

작가는 부커상 인터뷰에서 “소설은 미디어나 저널리즘이 도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방어기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라며 “독자들은 소설을 통해 마치 자신이 그 현실을 직접 살아온 것처럼 느끼고, 그 경험을 몸으로 기억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소설은 현재 시제를 사용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쉼표를 반복적으로 쓰는 실험적 방식을 통해 긴박한 상황과 휘몰아치는 감정을 전달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급진적 공감을 위한 시도”라고 설명하는데, 특히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더해지는 비극적 상황과 등장인물이 겪는 절망과 고통은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한편 소설은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정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보여준다. 아일리시는 “이 나라에는 아직 헌법이 있다”라고 믿고 감청이 의심될 때에도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에 그런 부정행위는 없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은 권력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과정에 논리적인 비약은 없다. 소설은 우리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보로 넘겨버렸던 타국의 뉴스가 우리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아일리시의 고통은 단지 아일리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역사는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침묵의 기록이다.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들의 기록, 갈 데도 갈 방법도 없으면 떠날 수 없다. 아이들이 여권을 받지 못하면 떠날 수 없다. 발이 땅에 뿌리내려서 떠나는 것이 곧 발을 잘라내는 것이라면 떠날 수 없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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