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재조정? 표현만 살짝 바꾼 '휴진'에 환자는 속탄다 [현장에서]

2024-07-03

'강도 높은 진료 재조정을 통해 환자들을 지켜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휴진 돌입(4일) 하루 전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이 이런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교수 비대위는 무기한 휴진 대신 '진료 재조정'이라고 했다. 경증 환자를 줄이고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집중하려고 시스템을 정비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17일 자료에서는 "휴진"이라고 명시해 놓고 지금은 진료 재조정이라고 한다.

비대위는 4일 기준 주요 수술이 전주 대비 29% 줄고, 외래 환자도 17.2% 감소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할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외래 예약을 양보해달라"고도 밝혔다. 진료 재조정이라기보다 부분 휴진에 다름없다.

서울대병원의 진료 복귀, 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 유예 결정 등으로 주춤하는 듯했던 대형병원 휴진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세브란스병원이 무기한 휴진에 들어갔고, 고려대병원·충북대병원이 이달 중 휴진을 예고하고 나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초 전면휴진을 언급하다 수위를 낮춘다는 점이다. 중증·응급 환자 같은 필수진료를 놓지 않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무기한' '휴진' 같은 표현만 안 쓴다고 해서 진료 차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반대로 휴진을 내세웠지만, 세브란스병원 같은 데는 '무늬만 휴진'에 가깝다. 사실상 정상 진료 상황이다. 내부적으로도 동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한 휴진이 부른 모순적 상황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환자들은 치료 일정을 미루는 연락이 갑자기 올까 전전긍긍한다. 설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과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보호자 정모씨는 "계속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는 휴진 소식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각 병원 비대위는 정부 정책이 바뀌고,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같은 전공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백지화는 불가능하다. 교수들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도 매달린다. 환자는 불안하다. 김재학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의사 처분만 바라보는 환자는 '을'일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희귀질환 환자가 찾는 빅5 병원 휴진 소식이 나오면 노심초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진료 예약이 조금씩 밀리는 경우가 나오고 있단다.

교수들의 의료개혁에 대한 불만, 피로 누적 같은 어려움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진료 현장을 떠나서는 어떤 주장도 환영받기 힘들다. '툭 하며 휴진'이라는 비판만큼 불명예스러운 게 없다. 환자의 "존경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곽점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장은 "의료진들이 현장에서 고생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욕먹어도 병원을 지켜주는 분들에게 더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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