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웅 기자(jiwm80@mk.co.kr), 오수현 기자(so2218@mk.co.kr)
10년 넘도록 3만弗에 갇힌 韓
엄격한 신산업∙노동 규제 등과
높은 법인세율에 기업들 해외로
근로시간 긴데 노동생산성 최하위
2040년 잠재성장률 0%대 될수도

2024년 8월. 세계은행은 대한민국을 ‘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대표 사례로 꼽았다. ‘성장 슈퍼스타’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세계은행은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로 투자, 기술 도입, 혁신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94년 1만달러를 돌파했다. 9년 후 2005년에는 2만달러도 넘었다. 다시 9년 만인 2014년 3만달러를 달성하며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한국의 성장 스토리는 거기까지였다.
10년이 지난 2024년에도 3만달러대에 머물렀다. 2023년 일본을 누르고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6위에 올랐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엔화 약세 때문이었다.
강창구 한국은행 국민소득부장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2027년 4만10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이후 환율 변동성이 커진 사실 등을 고려하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선진국 함정에 빠진 결정적 이유는 저성장이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3%대였던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이제 1%대에 고착화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한국의 성장률이 2030년대부터 0%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실질성장률 하락은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은행은 현재 2%인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대에 1.1%로 떨어지고, 2040년대 중반에 0.6%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 규모는 한국보다 15배 크지만 지난해 성장률은 2.8%로 2%인 한국을 앞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미국 경제가 2.1%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1.5%보다 0.6%포인트나 높다.

미국 경제가 질주하는 중심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구글, 테슬라 등 빅테크 기업이 있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GE, 엑손모빌, 인텔 등은 초우량기업 30개 종목으로 구성된 다우지수에서 퇴출됐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산업 재편이 필요하지만 인기 없는 정책이라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좀비기업을 지원할 게 아니라 새롭게 커 가는 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환경 등 수많은 규제도 대한민국을 3만달러 함정에 빠뜨린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버, 에어비앤비, 타다 등 신산업이 전부 금지된 곳이 한국”이라며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한 등 경직된 노동규제에 높은 법인세율 때문에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내에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져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함정에서 탈출하겠다는 국민적 의지와 단합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김인철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선진국들의 성장 역사를 보면 지금 대한민국처럼 극심한 국론 분열은 없었다”며 “대내외 불확실성은 날이 갈수록 커져 기업들이 장기투자 계획을 세우고 대응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는 4만달러를 넘기는커녕 3만달러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생산성도 문제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이스라엘 등에 이어 6위로 긴 편이지만 노동생산성은 최하위권이다. 2023년 기준 미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77.9달러지만 한국은 44.4달러에 그친다.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도 숙제다. 기술 혁신, 규제 개혁 등에 직접 영향을 받는 총요소생산성은 우리 경제가 3만달러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지표로 꼽힌다. 성장을 떠받치는 또 다른 축인 노동과 자본 투입 증가를 계속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