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31일 kt와 LG의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 팬들의 눈을 의심케하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인 kt 강백호가 타석이 아닌 마운드에 섰다.
워낙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어 팬 서비스 차원이나, 불펜 세이브를 위해 야수가 등판한 게 아니었다. 강백호의 자원 등판이었다.

이강철 감독은 다음 날인 1일 "(백호가) 투구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더라. 예전에도 고등학교에서 마운드에 오른 적이 있다. 본인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행동 같았다"고 사연을 소개했다. 최근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진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선발 명단에서 빠진 뒤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강백호는 팀이 0-16으로 뒤진 8회 6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KBO리그 1군 경기 첫 공식 등판. 결과는 참담했다. 1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해 3안타와 1볼넷을 내주고 2실점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35㎞, 평균 구속은 132㎞가 찍혔다. 주 무기는 슬라이더였고, 결정구로는 커브도 활용했지만 위협적이지는 못했다.

강백호는 서울고 시절 투수와 포수를 겸업하며 이름을 날렸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투수로 눈독을 들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프로에 와선 타자에 전념했다. 2019년 올스타전에선 이벤트성 투수 등판을 한 적 있긴 하다.
강백호는 올 시즌 52경기에서 타율 0.232에 7홈런 27타점에 머물고 있다. 특히 7월 성적은 타율 0.179(28타수 5안타), 최근 9경기로 한정하면 0.083(24타수 2안타)까지 떨어졌다. 2025시즌 종료 후 첫 FA를 앞둔 상황에서 성적은 물론 입지마저 흔들리고 있다.
강백호가 같은 우투좌타인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처럼 '이도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이날 마운드에 오름으로써 그동안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시 추스리는 계기로 삼겠다는 뜻이다.
강백호는 마지막 타자 김민성을 삼진으로 잡으며 1이닝을 마무리했다. 마운드를 내려올 때 관중석에선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kt는 0-18로 대패했지만, 강백호의 1이닝은 팀과 팬은 물론 스스로에게 작지 않은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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