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높은 대학 진학률의 이면
학기 중 취업 성공했지만 ‘업무 불만족’
퇴사 후 軍 복무 마치면 경력단절 많아
철도고, 2024년 졸업생 절반이 大入 선택
대부분 진로 결정 못한 채 ‘회피성 진학’
SNS 등 중소기업 현장 희화화도 한몫
부정적 인식 탓 中企선 구인난 시달려
“중소기업이 다 이런 건지, 제가 유난스러운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른 회사에 들어가도 똑같이 힘들면 그때는 그냥 다녀야겠죠.”
서울 송파구에 있는 직업계 고등학교를 지난달 졸업한 A(19)씨는 지난해 11월 학기 중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으나 2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직원 20명 남짓의 중소 경영컨설팅 업체에 들어간 A씨는 입사 때만 해도 최소 3년은 다니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찬 포부는 얼마 가지 못해 흔들렸다. 회계정보과를 나와 자금관리 업무를 맡은 그는 “업무에 체계가 없어 힘들었다”며 “계획한 일이 자주 바뀌고, 갑자기 진행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 버틸 수 없었다”고 4일 말했다.
A씨는 이른바 ‘고졸 쉬었음’ 청년이다. 올해 1월 43만4000명에 달한 ‘쉬었음 청년’(15∼29세)에 속하는 그는 진학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쉬고 있다. ‘쉬었음’은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그는 “학기 중 취업한 뒤 저처럼 그만둔 친구들이 꽤 있다”는 말을 남겼다.

쉬었음 청년의 학력을 보면 A씨와 같은 고졸 이하 비중이 대졸보다 더 많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쉬었음 청년 중 고졸 이하 비중은 57.6%, 대졸 이상은 42.4%를 차지했다. 정부가 고졸 청년에 주목하는 이유다. 고용노동부는 88만명의 대학 국가장학금 신청자 개인정보 동의를 얻은 것처럼 직업계고 졸업생 정보도 올해 본격 연동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지난해 17개교의 직업계고를 거점학교로 선정했고, 올해 7곳을 추가할 예정이다.
◆역대 최고인 진학률의 실체
취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직업계고등학교에서는 진학률이 높아지는 추세가 뚜렷하다. 일례로 용산철도고등학교의 지난해 2월 졸업생 절반가량인 48.0%(60명)가 진학을 택했다. 취업 비율은 37.6%(47명)였다. 올해는 140명 중 각각 48.6%(68명), 35.7%(50명)가 취업과 진학을 택했다. 5년 전인 2020년만 해도 졸업생 249명 중 취업자는 52.6%(131명)로 진학자 20.9%(52명)보다 훨씬 많았다.
문제는 ‘회피성 진학’이다. 문성욱 용산철도고 산학협력부장은 “졸업 직후보다 취업이나 대학으로 진학한 뒤 쉬는 청년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졸업생들이 취업 뒤 업무 환경에 불만족해 퇴사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경력이 단절돼 쉬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졸업 뒤 2명 중 1명은 대학에 진학하는데 대부분 학생이 본인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경우”라며 “이 학생들이 대학 졸업 뒤 쉬었음 청년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진학률 증가 추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교육부가 지난해 4월 기준 1∼2월 직업계고 577곳을 졸업한 6만3005명을 분석한 결과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는 비중은 48.0%로 역대 최고였다. 2023년(47.0%)보다 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전문대가 54.5%, 일반대가 45.5%였다. 2018년까지는 취업자가 진학자보다 많았으나 2019년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반면 지난해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해 졸업자 중 취업자 비율은 26.3%로 202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졸업생 중 대학에 진학하거나 입대한 사람을 제외하고 계산한 취업률은 55.3%로 전년 동기(55.7%) 대비 0.4%포인트 하락했다.
철도고 경우엔 취업도, 진학도 하지 않은 진로 미결정 학생이 올해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전체 졸업자 중 14.4%(18명)가 진로를 정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이 비율이 15.7%(22명)로 1.3%포인트 올랐다.

◆“중소기업 부정적 인식 커져”
인구 감소로 과거보다 대학 입학 문턱이 낮아진 점에 더해 현장실습에서 실망한 학생들이 진학을 택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부장은 “지난해 졸업생 중 현장실습 뒤 복교한 학생들 대부분이 중소기업 현장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느끼곤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직업계고를 올해 졸업한 B(19)씨도 “내신에서 직업계고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니까 이점을 이용한 아이들도 있지만, 현장실습에서 잘 못 버틸 것 같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방향을 트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유튜버 등에서 중소기업을 희화화한 콘텐츠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문 부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중소기업 현장을 풍자 또는 희화화한 것을 아이들이 공유하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진 것을 느낀다”며 “취업 시 일자리 질을 따지는 추세도 과거보다 뚜렷하다”고 밝혔다.
실제 직업계고 취업자를 사업장 규모별로 볼 때 300명 이상 사업장 취업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직업계고 취업률에서 300명 이상 규모 사업장에 취직한 비율은 34.5%로 2023년보다 1.1%포인트 증가해 3년 연속 상승했다.
중소기업계 구인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발표한 ‘2024년 외국인력 고용 관련 종합애로 실태조사’를 보면 중소제조업체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유는 ‘내국인 구인이 어려워서’(92.2%)가 압도적이었다. 이 비율은 2022년 90.6%, 2023년 91.3%에서 지난해 92.2%로 올라갔다.
정부가 취업 연결뿐 아니라 취업 이후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들 시각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부분”이라며 “따라서 취업 알선에 더해 직장 적응까지 정부가 프로그램을 확대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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