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곧 퇴사를 앞둔 지인 K씨의 사연을 소개해본다. 50대 여성인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회사에서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버겁다고 했다. 이직조차 순탄치 않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는 어느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다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 자기 또래의 여성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최근 들어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했다. 언제까지 회사에서 버틸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한 후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모습이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직장을 다니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던 그였다. 그러나 현실이란 벽 앞에서 ‘직장’이라는 조직을 졸업할 때가 됐다는 걸 그는 결국 인정했다.
그가 퇴사 후 제2의 직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일은 다소 의외였다. 바로 장례지도사. 고인의 마지막 길을 경건하게 배웅하는 의미있는 일이긴 하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다. 솔직히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울부짖음을 바라보는 것도 버겁고, 차갑게 굳은 고인과 단둘이 한 공간에 머물 자신도 없다. 마지막 숨을 조용히 거둔 사람도 있겠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생을 마감한 분의 안타까운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두렵다.
가냘픈 외모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말이 나온 탓에 그 말을 들은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그는 진지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살아있음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누구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걸 가슴으로 이해하게 됐다며, 고인 한 분 한 분의 마지막 길을 잘 보내드리면 뿌듯할 거라고, 삶을 대하는 긍정적 자세를 갖게 될 거라고 했다.
며칠 후 그는 곧장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다. 본격적으로 장례지도사 준비에 착수하겠단다. 발 빠른 실행력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하는 일은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로’라는 건 입시 때 한 번, 대학 졸업과 취업을 준비하며 또 한 번 겪으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언젠가는 기존의 삶에서 궤도를 바꿔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던 삶을 바꾸고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들이 좋다는 일이 보이면 새로운 경쟁에 또다시 휩쓸리기도 한다.
조금 이상적일 수 있으나,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시작할 때는 원하는 일에 한발짝 다가갔으면 한다. 근사해 보이지 않아도 자신에게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어쩌면 많은 이들이 중년의 나이에도 방황하는 이유는 원하는 일을 제대로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장례지도사를 준비하겠다는 K씨를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유를 듣고 보니 그와 잘 어울리는 일 같다. 의미가 없으면 흥미를 잃는 그에겐 누군가의 마지막을 곱게 단장하고 마무리하는 일이 고귀하게 여겨졌을 테니. 그를 보며 깨달았다. 어쩌면 퇴직 후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