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의사도 아파요?”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의사는 어떤지 몰라도 치과의사는 가끔 아플 때도 있어요”라고 답을 한다.
의사도 아프다. 그렇지만 아프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실망을 한다. 사람 몸에 대해서 많이 아는,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 지킬 걸 잘 지키는 의사들마저 아프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고 덜 지키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야말로 건강에 대해서 기댈 곳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전지전능이어야 한다. 아파서는 안 된다. 혹시 감기라도 걸려서 근처 내과에 갔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여기 원장님하고 친해서 놀러왔다”라고 해야 한다. 결코 의사는 아파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의사도 좋은 일인데 현실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의사도 아프다.
언젠가 어지럼증이 생겨 병원에 갔다.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쓰여 여기저기를 다니다 안 돼 강남 성모병원 신경과를 소개 받아 갔다가 다시 이비인후과를 소개 받았다. 하도 오래 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나는 대충 오전 11시쯤으로 예약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며칠 전에 어떤 검사를 하고 그 날 결과를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11시 반이 되어도 순서가 돌아오지 않다가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이제 내 순서가 되었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게 진료실 안으로 들어 와서 기다리라는 지시였다. 이비인후과의사는 어떤 생활보호 대상자인 늙은 환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진료 하는 장면이 보이지는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한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했다. 의사가 생활 보호 대상자에게 돈을 안 들이고 진료를 받는 방법을 너무 상세히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에휴, 저런 건 다른 사람이 설명을 해 줄 수 없나?’ 하고 나는 한심하게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둘러 봐도 거기에 그걸 설명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바빴다. 하여간 별로 돈도 되지 않는 환자를 위해 누군가가 그렇게 설명을 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은근히 걱정이 되는 일이 있었다. 잠시 후면 점심시간인데 이러다가는 진료도 못 받고 돌아가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었다. 자연히 시계를 자꾸 보게 되었고, 지나가던 간호사가 그런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우리 과장님은 오후에 진료가 없으세요. 그래서 오전 약속 환자를 저녁 10시가 되어도 다 봐주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따듯한 말투였고 따뜻한 내용이었다. 오후 1시가 넘어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검사 상으론 별 이상이 없는데요.”
의사의 말에 나는 실망했다. 은근히 검사 상으로 이상이 있어서 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많은데, 제가 지식이 짧아 도대체 어떤 과로 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런가요?”
“네, 그래서 그러는데 혹시라도 이 증상이 낫게 되면 제게 좀 연락을 주시겠어요. 환자들이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방황을 하는 게 너무 딱해 보여서.”
“네, 꼭 그러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일어나자 그분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몇 발자국 따라 오면서 다시 말했다.
“꼭 알려주셔야 해요.”
“네.”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급히 그곳을 떴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내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도 내 환자를 그 의사처럼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보고 싶어 발걸음을 서둘렀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그렇게 했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으니(하이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으니
그다지도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이
내 가슴 속까지 스며드누나
하나님이 너를 언제나 이대로
밝고 곱고 귀엽도록 지켜주시기를
네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나는 빌고만 싶어지누나
내가 외고 있는 유일한 시이다. 나는 이 시를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속으로 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치과의사가 다 그렇다. 직접 시를 마음속으로 읊지는 않지만, 이런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치과는 그 특성상 치과의사의 손길이 오랫동안 환자의 입 안에 남는다. 그래서 치과의사들은 최선의 치료를 하며 또 그 치료가 오래가기를 기도하는 존재이다. 최선이다. 최선을 다하고 기도를 한다. 대충 치료를 할 수는 없다.
만약에 어떤 치과의사가 치료를 마친 환자에게 기도하듯 -오랫동안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게 유지하세요.- 라고 했을 때 환자가 - 원장님, 밝고, 곱고, 귀엽지가 않은데요.- 라고 대답한다면 정말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오늘 갑자기 예전 만났던 의사 생각이 난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나는 다시 또, 내가 오래 전에 만났던 강남 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과장님처럼 환자를 최선을 다해 치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