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로 보이는 세상

2025-03-05

입원을 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발의 작은 염증도 이기기 힘들 만큼, 쉼없이 달려온 몸은 지쳐 있었던 듯 합니다. 누군가는 더 큰 병으로 몇 번씩이나 반복했을 입원이지만, 운 좋게도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해 본 며칠 간의 병원 생활은 삶을 다른 각도로 보게 해 주었습니다.

먼저 여러 사람이 머무는 단체 생활이 꽤 고단하다는 것을 오랜 만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편치 않은 몸을 추스리는 것도 힘든 이들이 모이면 각자의 신경은 곤두서기 일쑤입니다. 잠드는 시각도, 중간에 처치를 받는 횟수도 모두 다르다 보니 누군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선잠을 깨어 뒤척이게 됩니다.

난생처음 경험했던 입원 생활

바깥 세계 비현실적으로 보여

3D 세상서 고립된 느낌 이럴까

민감해진 환자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을 쉼 없이 돌봐주는 의료진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통증이 몰려오든, 수액 줄이 꼬이든, 불철주야 힘든 내색없이 돕는 그들의 헌신은 숭고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으로 분화되는 시대, 식구 중 한 사람이 병수발을 전담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가족은 면회가 허락된 주말에 찾아오고, 그 사이 주중에 환자를 돌보던 전문 간병인들이 잠시 쉬는 모습들은 병동에서 익숙한 장면이 되고 있습니다.

입원 중 얻게 된 가장 큰 발견은 병동 안의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병원 밖 세상이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을 다쳐 잘 걷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항상 몸에 연결된 수액 주사 줄로 인해 동선은 입원 병동 안으로 한정됩니다. 그 제한된 공간은 한 겹 환자복 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관리됩니다. 1기압 15도로 유지되는 실험실처럼 항온 항습 장치에 의해 조절되는 병동만 허락된 환자에게 시간과 공간의 감각은 점차 무뎌집니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다시 봄이 오는 것을 창을 통해 보아도 병동 안의 환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환경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감각은 자신이 인지하는 세계의 축소를 만들어냅니다. 계속 창 밖을 바라보며 밖의 세상이 마치 TV 속 영화와 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삶은 삼차원의 3D 공간에서 이루어지지만, 이차원 평면의 스크린 위에 보여지는 2D 화상과 같이 실제의 삶을 가상의 것처럼 인식하게 되는 경험은 제게 낯선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삶에서 2D로 세상을 보는 경험을 수없이 해 왔습니다.

빈곤의 시절, 온 국민의 선망은 극장과 TV 위에 흐르는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선진국의 일상이었습니다. 잘 차려입은 고등학생들이 졸업 무도회를 가거나, 유람선을 타고 지중해를 누비는 유복한 모습들은 그 시절 개발도상국 한국에서는 언감생심 꿈꾸기도 어려운 별나라 이야기와 같았습니다.

소셜미디어가 확산하며 휴대폰 화면 위에는 더욱 극적인 장면들이 경쟁하듯 보여집니다. 비행기 일등석 넓은 자리와 6성급 호텔의 스위트 룸을 인증하며 전 세계의 풍광을 전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삶은 부러움과 질시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 일으킵니다. 그 역시 실재한다 하지만 닿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기에 마치 2D와 같이 느껴집니다.

화려하고 선망받는 장면만 2D로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섬세하고 민감한 성격으로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합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농담이 누군가에게는 진지하게 느껴질 수 있듯,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우리네 사람들의 보통의 삶 역시 2D로 다가오는 것일지 모릅니다. 일터에서 동료와 가벼운 수다를 떨고, 힘들지만 그래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다시 새로운 이들을 만나 서로를 알아가며 위로를 얻는 평범한 일상이 그 분들에겐 용기내기 어려운 장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제게 병동이 현실의 전부였던 것처럼, 누군가 자신의 집이 현실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한다면 ‘집’ 밖의 모든 것이 정말 위험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퇴원 전 의료진 분들에게 작은 케이크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수많은 환자 중 하나에 불과했겠지만, 제게 그 분들은 세상을 다시 3D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소중한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저는 일주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 밖의 세상이 두려운 분들은 저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3D 세상으로의 참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면 우리가 함께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이불 밖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긴 겨울을 지나 어김없이 다시 시작하는 이 봄을 원없이 함께 즐기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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