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사람을 대할 때 편견 및 고정관념 없이 대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지 않은 이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누군가를 처음 대할 때 우리는 대화하지 않고도 성별과 인종, 연령, 생김새와 차림새 등에 따라 은연중 그에 대해 자의적 해석을 내리고 상상을 한다. 아무 정보가 없을 때도 그런데, 하물며 그에 대한 정보나 소문을 인지하고 있을 땐? 더 말할 것도 없다.
드라마 ‘마녀’의 주인공 박미정(노정의)은 주변에서 마녀라 불리며 배척당하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정의 주변 남자들은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다치는 일이 잦다. 알고 보면 그 남자들은 모두 미정을 좋아했다. 심지어 미정에게 고백했다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낙뢰, 익사, 추락사 등)로 사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 미정을 마녀라 부르며 배척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남동생이 있는 내 입장에선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 드라마 남주인공인 이동진(박진영)의 어머니 오미숙(장혜진)이 아들을 염려해 미정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일에 나섰던 것을 쉬이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미정에겐 잘못이 없다. 이 드라마의 장르는 미스터리 로맨스이지, 판타지가 아니다. 미정이가 빗자루를 타고 고양이를 부리며 남자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게 아니란 소리다. 도리어 미정은 저주를 받은 것에 가깝다. 학창시절 미정은 자신의 소문을 알고 남들 볼세라 조용히 숨어 지냈다. 점심시간마다 따로 나와 혼자 밥을 먹고, 체육시간이나 소풍 때도 섬처럼 홀로 있었다. 미정 주변의 숱한 사고를 당한 남자아이들에게 미정이 먼저 접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동생도 있는 내 입장에서, 내 여동생이 미정의 입장이라면 미정의 아버지 박종수(안내상)처럼 눈에 불을 켜고 소문의 발원지를 캐고 드잡이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미정의 상황은 곤궁하기 짝이 없다. 학교생활은 물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미정의 아버지가 뱀에 물린 미정을 구하다 세상을 떠나면서 미정은 ‘아버지마저 잡아먹은 마녀’가 되어 마을에서 쫓겨나기에 이른다. 말했다시피 미정에겐 잘못이 없지만, 보통 사람 입장에서 알 수 없는 불운의 기운이 내 주변에 있는 것은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들이 죽으면 며느리에게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 하며 길길이 날뛰던 시어머니를 전근대적이라 욕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의 분위기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렵다.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한 미정은 더욱 철저하게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일부러 철거가 예정된 동네에 들어가 사는가 하면, 일상의 생필품은 모두 마트에서 배달시키고, 외출은 인적이 드문 밤이나 새벽에만 나선다. 그런 미정을 구하려는 남자가 이동진이다. 동진은 태백에서 미정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미정을 눈여겨 보았다. 차마 말을 걸어보진 못했지만 언제나 동진의 눈길은 미정을 쫓았고, 마녀라 배척당하던 미정의 오명을 벗겨주고자 통계학과에 입학했을 만큼 그녀를 향한 마음이 크다. 그런데 문제는 동진이 미정의 오명을 벗겨주고자 미정 주변 사고를 통계학적으로 접근해 조사할수록 모든 사고의 공통점이 미정이며, 미정이 정말 (저주받은) 마녀일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다.
저주받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다치거나 죽지 않고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일반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접어버릴 사랑을(실제로 미정 주변의 남자들은 다치고 나서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게 된다), 동진은 진지하게 밀어붙인다. 동진의 방식대로. 여기서 동진의 직업이 데이터 마이너(방대한 양의 데이터 속에서 의미 있는 패턴과 관계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직업)인 점이 의미심장하다. 미정을 둘러싼 모든 사고가 미정을 공통분모로 한다면, 일종의 ‘죽음의 법칙’이 존재한다면 동진은 그 법칙의 오류를 찾고 법칙을 피해 미정을 세상에 나오게 돕고자 한다.

과연 동진의 사랑이 미정을 세상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까? 동진의 마음은 미정의 ‘죽음의 법칙’을 피해 성공할 수 있을까? 10부작인 ‘마녀’는 6화까지 방영했는데(3월 5일 기준), 7화 예고에서 미정이 동진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나오면서 동진이 일명 ‘죽음의 법칙’에 모두 해당한다고 나오며 위기에 봉착한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는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상당부분 원작을 따라가고 있지만 전개 방식이나 결말에서 어떤 각색을 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동진의 방식은 세상의 모든 관계에 있어 고려해 볼만한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동진은 미정이 눈길에 든다고 함부로 그 앞에 나서지 않았다. 조금만 관찰해 보면 미정이 (소문과 징크스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고 관심받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남녀관계에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의사를 알아보지 않고 그에게 접근하고 들이대는 방식은 다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던 미정에게 끝내 고백했다가 큰일을 당할 뻔한 ‘지하철 고백남’ 이현철(이봉준)도, 미정의 사고 조사차 접근한 동진을 경찰로 오해하고 말하지 않던가. “많이 큰 죄인가요? 따라간 거요. 저도 제가 잘못한 거 알아요. 그분이 직접 저 신고한 거죠?”라고. 그렇기에 동진이 미정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봐 달라 갈구하지 않는 점은 꽤 인상적이다(물론 이후 미정을 돕기 위해 하는 그의 방식은 스토커로 볼 지점이 농후하긴 하지만).

사실 ‘죽음의 법칙’이 따라다니는 미정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는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고, 그를 배척하는 것이 너무 쉬운 사회다. 편견과 고정관념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기본 옵션이다. ‘가난해? 결핍이 있으면 음침할 테니 싫어. 고졸이야? 무식한 사람은 싫어. 외동이야? 이기적이라 싫어. 홀어머니에 시누이가 많아? 마마보이일 테니 싫어. 남자 키가 작아? 자격지심 많을 테니 싫어. 여자 키가 커? 드셀 테니 싫어. 뚱뚱해? 자기관리 못하는 거니까 싫어. 전라도 출신이야? 뒤통수 잘 치는 지역이라 싫어. 경상도 남자야? 가부장 끝판왕일 테니 싫어···.’ 남녀관계만 따져도 편견과 고정관념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배척과 혐오가 난무하는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마녀’는 이런 각박한 혐오의 세상에서 동진을 내세워 사랑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원작의 스토리텔링이 워낙 훌륭한 지라 ‘마녀’는 곱씹을 여지가 많은 드라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많다. 주연을 맡은 박진영과 노정의도 고군분투하며 진정을 다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존재감이랄까 흡인력에서 순간순간 아쉬움이 느껴진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은 만큼 조연인 허은실(장희령)이나 김중혁(임재혁)의 롤이 상당히 중요한데 붕 뜨는 연기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면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볼거리가 적은 이야기를 더욱 루즈하게 만드는 연출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강풀의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 ‘마녀’가 아닐까 싶다. 혐오가 난무하는 대혐오의 시대에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갈구하는 사람들도 외면하기 힘든 작품인 만큼, 자신이 강풀 작가와 결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시청을 권한다. ‘마녀’는 채널A에서 매주 토, 일 오후 9시 10분에 방송 중이며,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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